드라마 작업실에서 경제를 쓰다

by 이작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방송작가가 된 나는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딴짓'을 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거라는, 알고 보면 다른 곳에 더 큰 재능과 흥미가 있을 거라는, 엉겁결에 적성에도 안 맞는 직업을 선택해 이렇게 매일, 매 순간 괴롭고 힘든 거라는,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의 진짜 적성을 찾아 이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많은 '딴짓' 중 가장 첫 번째는 드라마 작가 도전이었다.

방송작가 8년 차가 되었을 무렵, 결혼과 동시에 생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벗어났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긴 나는, 본격적인 딴짓에 몰입했다. 문제는 드라마 작가 도전이 내가 너무너무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직전에 함께 프로그램을 했던 작가 언니가 드라마 교육원에 등록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시작했다. (그 언니는 얼마 후 다시 방송작가의 길로 돌아갔다)


엉겁결에 시작했지만, 그래도 8년 동안 방송국에서 글쓰기를 한 사람인데 평타는 칠 수 있겠지. 그러나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의 드라마 교육원 과정 중, 나는 연수반 이상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니까 하게 되는 그런 일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에 무턱대고 뛰어들다니.

게다가 성격이 급해 한번 시작한 일은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드라마는 다음 회까지 시청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끝날 무렵 새로운 갈등 상황이나 사건을 등장시켰다. 그러면 무슨 일에든 감정 이입을 심하게 하는 게 특기인 나는 다음 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보다 더 가슴 아프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순간순간 드라마 장면이 생각나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영화는 어찌 되었든 영화관을 나올 때 해피엔딩이든 언 해피엔딩이든 결말이 나니 덜했다)


결국, 나는 드라마 작가는 적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방송작가로 복귀했다.

나가려고만 하면 집에서의 시간이 소중해지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나는, 어쩌면 방송작가가 적성일지도 모른다는, 운 좋게 한 방에 적성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로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가치가 매겨진다고.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한 딴짓은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었다. 기초반 수업을 함께 들으며 알게 된 친구들.

몇몇은 드라마 ON AIR에 성공했고, 몇몇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제부터 그녀들이 모여 글을 쓰는 작업실에 나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드라마는 아니다.

방송작가 일이 거의 끊길 무렵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했는데, 드라마보다는 적성에 맞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외로움이 컸다. 서재나 스터디 카페에 홀로 앉아 있으면 세상과 단절된 느낌에 고립감마저 들었다. 결국, 나는 소통을 좋아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소설 습작도 흐지부지 손을 놓으려던 찰나, 추를 만났다.


"언니, 내 작업실에 와서 써. 책상 많아."


추는 습작생 때부터 그랬다.

"언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써."


추의 집에는 항상 드라마 공모전을 준비하는 습작생들이 있었다. 추의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추의 방과 거실에 모여 글을 쓰던 습작생들. 심지어 추가 집에 없어도 그들끼리 모여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글을 썼다. 그때부터 추는 이미 드라마 속을 사는 아이였다.


작업실로 첫 출근한 어제는 추와 그녀의 보조 작가만 나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 사람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라마 교육원 기초반 때부터 알아온 사이 기는 하지만, 프로 작가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괜히 긴장이 됐다.


"추~ 나 왔어!"

"언니, 3시 반까지는 이것 좀 볼게. 개장하자마자 던졌어야 했는데 물린 게 있어서."

"... 응? 그게 뭔데?"

"주식."


글을 쓰는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크다. 나를 팔아야 자산이 만들어지는 직접 노동의 대표 직군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첫 번째 작품을 ON AIR 하는 데 성공하고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인 추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언니, 내가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누가 날 불러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글만 쓰고 있어. 게다가 노동의 속도와 자본 증식의 속도는 달라. 노동의 속도가 자본 증식 속도를 이길 수 없어.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무 살에서 마흔 살이 되었는데 그렇게 눈 한 번 더 깜빡하면 육십이 될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노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라고."


주식 시장이 마감한 후 나는 재테크와 주식 시장에 대한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는 나는 외로움과 고립감보다 노후 준비가 부족한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그 짧은 시간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추의 작업실에 다니는 동안 재테크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