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대리님」 미공개 엔딩 : 햇살의 정원

에필로그 : 햇살의 정원

by 미닝리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라 소설책에선 빠진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대리님」 출간 시 수록하지 않은 미공개 에필로그입니다.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말이라 출간 당시에는 굳이 언어화하는 것보다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소설책이 나온 뒤 선설아와 문백현을 떠나보내려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더군요. 많은 독자분들이 자연스럽게 해피 엔딩으로 읽어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몇몇 분들이 "해피 엔딩 맞죠?"라고 거듭 확인하시는 걸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뻔한 해피 엔딩이 주는 충족감도 있는 법이라는 것을요.

혹 소설책의 결말에 아쉬움이 있으셨다면 아래의 이야기로 채워주시길. 두 사람은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2025년 6월, 이상민 드림.







/ 에필로그 : 햇살의 정원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초여름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했다. 택시를 부르면 더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가 불사조처럼 날아와 방파제 위에 내려앉았다. 하얀 보도블록 사이로 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바스락거렸다.


나는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잠시 바라보다가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해안가로 두어 걸음 내려서자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스며들었다. 볕에 달궈진 모래가 딱 기분 좋을 만큼 따끈따끈했다. 해변에는 때 이른 휴가를 온 사람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파도에 발을 담그며 깔깔거렸다. 이렇게 두어 시간 남짓한 거리만 회사와 현실에서 멀어져도 그 모든 일이 별거 아닌 것을. 선명한 여름 햇살 아래 속세의 고뇌란 하잘것없었다.


나는 문득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바닷바람이 쉼 없이 불어와 백사장의 발자국 같은 건 벌써 흔적조차 없이 지워지고 있었다. 다시 앞길을 바라봤다. 해안선 끝자락에는 바다를 향해 뻗은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에는 눈부시도록 새하얀 건물이 하나 오도카니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늘 아침에 받은 문자 메시지를 열었다. 모르는 번호에서 온 메시지였다.


- 햇살의 정원으로 찾아오세요!


이 짧은 문자 하나에 얼마나 흐느꼈는지 모른다. 비록 발신자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선 대리였다. 햇살의 정원.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선 대리의 '언어'였다. 나는 선 대리가 마침내 위험천만한 숲을 벗어나 안온한 정원에 이르렀음에 안도했다.


햇살의 정원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국의 카페 중에 그 이름을 가진 카페는 하나였다. 서울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해변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갈 만한 곳도 아니었다. 구환이 말대로 전국 카페 투어를 했다면 가장 마지막에나 찾을 수 있을 법한 구석진 카페였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자 서서히 숨이 가빠왔다. 실은 오르막에 힘이 들어서 숨이 가쁜 건지 곧 선 대리를 만나게 된다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가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할 무렵 눈앞에 작고 새하얀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오렌지색 차양막 앞에는 하얀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카페 주변에는 나무와 꽃을 심은 화분이 가득했다.


딸랑.

작은 종소리를 들으며 나무로 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찬장에 나란히 놓인 너구리 인형과 여우 인형이었다. 너구리 인형의 표정이 어쩐지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못생긴 너구리 녀석 같으니라고.


드문드문 앉아 있는 휴양객들 사이를 스쳐지나 카운터로 곧장 걸어갔다. 석양이 깊이 스며든 카운터. 그 뒤에서 느슨하게 머리를 묶은 여성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머리칼이 햇살처럼 따스한 주황빛으로 빛났다.


난 말 없이 카운터 앞에 서서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지도. 이대로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오늘 하루치의 행복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인기척을 느낀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석양에 반사된 얼굴이 눈부셨다. 그림처럼 돌아보는 그녀에게 난 다시 한번 반했다. 오래 전 탕비실 창가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녀를 본 그날처럼.


반가운 표정일까? 아니면 조금 놀란 표정일까? 카운터 앞에 마주선 그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잘 찾아오셨네요.”

“어렵지 않았어요.”

“우리 오늘 커피 한잔 하기로 했죠? 원두는 고소한 맛으로 드릴까요?”

“아뇨. 산미 있는 걸로 주세요.”


그녀, 선 대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커피 머신 앞에 섰다. 산미 있는 걸로 두 잔. 추출된 커피를 들고 카운터 밖으로 나온 선 대리가 카페 입구에 가더니 팻말을 뒤집었다.


‘오늘 영업 종료’.


우리는 석양이 비치는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오늘 밤은 아마 우리가 지나온 숲처럼 깊고도 길게 이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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