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자신이 누군지 안다면, 자신이 신이 창조한 가장 장대하고 가장 비범하고 가장 멋진 존재임을 안다면, 너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토록 경이로운 장대함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책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다가 멈춰 섰다. 울컥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나는 왜 "자신이 누군지 안다면"이라는 말이 진실임을 아는 걸까? 정말로 내가 가장 멋진 존재라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낀다면, 두려움은 사라질까?
길가에 핀 작은 꽃마리가 떠올랐다. 꽃마리는 두려움 없이 피었을 것이다. 문득 내린 눈을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하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일까?
엄마가 된 순간, 아니 아이를 잉태한 순간부터 나는 온통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엄마가 되면 모성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성은 눈물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졌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두려움이 함께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우는 작은 아가는 내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도 더 많은 사랑을 요구했다.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고, 아이는 절대적인 강자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서히 모성이 생겨났다.
그래서 소중했고, 더없이 사랑했으며, 그만큼 미치도록 두려웠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워 그들의 본성을 망칠까 봐. 내가 잘못된 존재라서, 제대로 키울 수 없을까 봐.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언제나 의심했으므로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못났어. 나는 부족해. 나는 무능력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가해하는 이 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한 번쯤은 이 말들이 진실인지 의심해봤어야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내게 했던 말들을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리니, 나는 온통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결국 벌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나를 버렸으니, 그것이 가장 큰 죄였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나는 깨어나야만 했다. 내 아이들을 나처럼 키울 수는 없었으니까.
만약 내가 신이 창조한 가장 장대하고 가장 비범하고 가장 멋진 존재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닐 도널드 월시는 체험을 믿으라고 했다.
내가 부족한 존재라고 믿기 전에, 내가 사랑으로 살아남은 진실을 보라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보라고. 결핍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이 책을 사두고도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 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이것이 신의 뜻일까?
"없음에도 있음"이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없음조차 존재하는 신. 그렇다면 내 안에도 신이 없을 리 없지 않은가?
신을 부정했던 순간, 두려움 속에서 울던 어린 보라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