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감상문
소설은 천천히 읽는 소설과 빨리 읽는 소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읽는 소설은 자꾸 멈춰서 생각하게 만든다.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떤 글귀를 옮겨 써서 남기려고 하고, 그런 곱씹음이 글을 새롭게 만든다. 반대로 빠르게 읽히는 소설은, 곱씹을 새도 없이 급류처럼 흐르는 이야기 속에 그냥 몸을 맡기게 된다. 이야기에 빠져서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빅 픽처>는 후자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언어는 직관적이고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인터넷 밈으로 많이 사용되는 문구 중에 "명작은 그 결말을 알고도 본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빅 픽처>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미 스포를 당한 채로 이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재미가 떨어질 새도 없이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금세 덮게 된다.
주인공 벤과 아내인 베스는 처음에는 사진작가와 소설가라는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하게 되고,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 각자의 꿈은 묻어둔 채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은 주인공 삶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 후 벤은 책의 제목과 같이, 그리고 자신의 오래된 꿈과 같이, 빅 픽처를 그리기 시작한다.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예전의 삶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우리는 태어났지만, 다시 태어나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책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안정적인 삶과 꿈을 좇는 삶 중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이다. 가정을 꾸려 교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모습과 꿈을 찾아 뉴욕 시내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삶을 대비시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이다. 그리고 사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이 비율을 맞춰가며, 어떤 것이 자신에게 정답일지 찾아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삶이 더 좋은 것이라는 명백한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교외에서의 삶을 아무 희열도 없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초반에 젊은 부부가 뉴욕에서 뉴크로이든으로 정착하는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마치 인생이 죽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벤은 쓰지도 않을 고가의 카메라 장비들을 사대고, 베스는 출판되지 못한 자기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른 열정을 찾아 바람을 피우게 된다. 처음에는 교외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가 진행되면서 작가가 두 가지 대비되는 삶에서 한쪽의 손을 들어준 것 같았지만, 극적인 사건 후에 주인공 벤이 예전의 삶을 다시 찾고 싶어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정답은 없다라는 정답을 보여준 것 같았다.
빅 픽처는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은 주인공의 행동 또는 마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기점에서 나뉘어 있다. 주인공의 삶이 돌이킬 수 없는 어느 기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상기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각 장에서의 벤은 모두 다른 사람 같다. 1장에서는 지쳐있지만 성실한 사람이라면, 2장에서는 괴롭지만 철두철미한 사람이고, 3장에서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지만 사실 그 어느 것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안정적인 교외의 삶에서 과도기를 겪은 후 위태롭지만 꿈을 향하는 삶으로 이동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안정적인 삶으로…. 그는 새로운 삶에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었다. 그는 자유를 얻게 되지만, 자유는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니 범죄 사건이 버무려진 서스펜스 소설이지만 극적인 요소들을 덜어낸다면, 적어도 나에게 이 소설은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보여주면서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이야기가 급물살을 치면서 내려온다고 했다. 빠르게 내려오면서 어떤 부분은 놓치고 내려왔을 수 있다. 소감을 정리하려고 앉아 다시 급류를 되짚어 올라가는 작업을 하다 보니, 곳곳에 탐구해 볼 만 다른 주제들도 많이 있다. 천천히 그 주제들을 곱씹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특히 사진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꿈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공감이 되거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 읽고 싶다면, 가볍게 읽고 무겁게 내려놓을 수 있는 <빅 픽처>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