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호는 앞으로 5년 안에 절반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경쟁보다 ‘나눔’을 선택한다.

by 이형관

흐뭇함과 위기감 사이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는가


요즘 나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서툴지만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그 아이들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예전 같았으면 ‘저 친구는 얼마나 빨리 성장할까’

‘언제쯤 나를 따라잡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흐뭇하다.


반대로 오래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다르다.

그들이 늙어서가 아니라,

오래된 방식에 머물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이미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어제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있다.

그 모습이 조금은 답답하다.


나도 한때는 그들과 경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지 않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늦은 밤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경쟁심은 잦아들고, 흐뭇함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흐뭇함은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옮겨갔다.


초등학교 때 처음 배웠던 사자성어가 있다.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라는 말.

그 문장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생의 어디쯤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그 한 줄을 다시 떠올린다.



좁은 시장에 서 있는 우리의 그림자


정보보호라는 업은 생각보다 작은 섬이다.

국가가 지켜주는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민간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규제라는 벽과 해외 경쟁자라는 파도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자리다.


최근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든 생각은

조금은 냉정하고, 조금은 솔직하다.


혁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돈이 보이지 않고,

새로운 인력도 보이지 않는다.

AI 예산은 책정되었지만

그 예산을 받아서 실제로 무언가를 해낼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AI 전문 회사에 연락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없다’ 혹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였다.


한국의 정보보호 시장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그리고 그 작음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블록체인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제 정보보호는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의심했다.

과장된 공포일 거라고.

그 기술로 이 업계를 무너뜨리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LLM은 달랐다.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알았다.

“이건… 못 따라가면 정말 잡아먹히겠다.”



ChatGPT가 사무실에 퍼졌을 때, 미래가 보였다


어느 날 사무실을 천천히 걸으며 동료들의 화면을 보았다.

그들의 모니터에는

문서 옆에서도, 회의록 뒤에서도, 기획서 구석에서도

ChatGPT 창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은 어색하고 서툰 사용법이지만

그들의 화면을 보면서 한 가지 방향만은 또렷해졌다.


업무는 LLM Agent로 향하고 있었고

조직의 중심은 GPU를 다루는 개발·서빙 구조로 재편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보보호 인력들은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판단 업무”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완곡하게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 5년 안에, 정보보호 인력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데이터 주권과 컴플라이언스가

이 업계를 붙잡아주는 마지막 울타리이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소버린 AI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그 울타리마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직군이 서서히 시대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경쟁보다 나눔을 선택한다


AI와 함께 일하며 나는 한 가지 진실을 배웠다.

이제는 개인의 능력보다

조직 전체의 학습 속도가 더 중요해졌다.

AI는 데이터를 흡수하고 패턴을 찾아내며

사람이 놓칠 것들을 쉽게 넘어서버린다.


그런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혼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흐르게 만드는 사람이다.

조직의 학습곡선을 끌어올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험을 연결하고

아이디어가 머물지 않도록 흐름을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나는 경쟁보다 나눔을 선택한다.


내 두 아들에게도

경쟁만 가르치고 싶지 않다.

경쟁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세상을 넓게 보게 해주진 못했다.


앞으로의 시대는

나누는 사람이 더 강한 시대가 될 것이다.

AI 시대의 인간 가치는

“내가 가진 것을 타인과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정보보호처럼 좁은 시장에서는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파이를 키우지 못하면

큰 나라들과 거대한 AI 생태계에

순식간에 잠식될 것이다.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 하나


“나는 지금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변화에 밀려나는 쪽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후배들처럼,

나는 오늘도 새로워지고 있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