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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Dec 13. 2017

줄리아드 스쿨은 내 친구

The Juilliard School


흐린 겨울날 아침 지난주부터 기온이 떨어져 춥고 하얀 눈이 내리더니 이제 겨울 날씨다. 어제 석양이 질 무렵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로컬 7호선에서 만난 홈리스는 "배가 고파요.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도와주세요. 제 이름은 스티븐이에요." 전에도 몇 차례 만난 키가 제법 큰 백인 남자의 슬픈 목소리가 가슴 아프게 했다. 추운 겨울이라 홈리스를 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플라자 호텔 부근 지하철역에 내려 어둠이 내린 센트럴파크를 보면서 걷다 콜럼버스 서클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지나고 줄리아드 스쿨에 공연 보러 가는 길 커피 한 잔 마시러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갔는데 하필 문이 닫혀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를 구입해 가방에 담고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을 지나 줄리아드 스쿨에 도착 입구에서 수위에게 가방 검사를 맡고 안으로 들어갔다. 홀리데이 시즌이라 로비에 세워진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입구에서 표를 보여주고 폴 홀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저녁 6시 공연을 기다렸고 저녁 7시 반 퍼커션 공연 표가 가방에 있는지 확인하자 안 보여 놀랐다. 서둘러 집을 나오느라 그만 깜박 잊고 집에 두고 왔다. 그때 낯선 남자가 내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묻더니 괜찮다고 하자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잠시 후 몇몇 사람들이 그분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줄리아드 스쿨에서 수업을 하는 교수님 인지도 모른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그분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줄리아드 공연 보고 나서 메트 오페라 '노르마'를 볼 예정이라고. 속으로 나랑 취향이 같은 분이네 하면서 웃음이 나왔지. 


올가을 자주 오페라를 보려고 계획했는데 나의 계획은 틀어지고 7시 반 공연표를 가져오지 않아 인터넷에 접속해 표가 남아있는지 확인을 했다. 그런데 박스오피스에 가서 표를 구입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작곡가 곡을 불렀다. 글린카,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사랑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은 내 가슴을 더 울렸다. 공연이 막을 내리자 얼른 메트(오페라)에 갔다. 이번 시즌 처음이었다. 저녁 7시 반 공연 시작. 꽤 많은 사람들이 입구로 들어가고 일부는 공연표를 구입하려고 기다리는 중. 박스 오피스에 저렴한 표가 남아있는지 묻자 나의 기대와 달리 좀 비싸 꼭 보고 싶지만 포기하고 돌아섰다. 

사랑하는 링컨 센터 분수대와 단테 파크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 저녁 7시 반 퍼커션 공연이 열리는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 박스 오피스에 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실망한 나의 얼굴빛을 읽은 경찰이 무슨 일이냐 물어서 공연표를 구하고 싶다고 하니 저쪽에 줄리아드 스쿨 담당자분이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줄리아드 스쿨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 파이널 대회 심사 발표를 하신 분이 표를 나눠주니 무료입장권 하나 받아 홀로 들어가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았다. 

퍼커션 악기 음악이고 중국 작곡가가 작곡한 컨템퍼러리 곡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는데  정말 좋아 오래전 뉴욕대에서 본 퍼커션 공연도 생각이 났다. 맨해튼이 아니라 플러싱에 사니 1부만 보고 나와 1호선을 탔는데 홈리스가 "오늘이 둘째 딸 생일이에요. 7살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내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구걸은 하지 않으나 소설에 나온 것처럼 아주 슬픈 눈빛이 감돌았다. 그는 찢어진 배낭을 손에 들고 있었다. 플러싱에 도착 지하철역 부근 메이시스 백화점 앞에서 "1달러 주세요"라 외치는 할머니 홈리스를 만났다.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추운 겨울날이라 승용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 20분 정도 기다리다 버스에 탑승하니 아주 멋쟁이 할머니 뉴요커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영화배우처럼 몸매도 아름답고 스타일도 멋진 할머니도 가끔 만난다. 홀리데이 시즌이라 플러싱 밤도 반짝반짝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곳곳에 보였다. 

오늘도 어제처럼 줄리아드 스쿨에 가서 공연이나 봐야겠다. 뉴욕에 와서 두 자녀를 데리고 줄리아드 스쿨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갔는데 이제 줄리아드 스쿨이 나의 놀이터가 되어버렸어. 과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줄리아드 학교 연습실에 아주 많아 놀라고, 피아노 건반이 아주 낡아 더 놀랐어. 많은 학생들이 연습을 한 흔적이지. 음악 동아에 나온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 정경화, 요요마, 길 샤함, 안네 소피 무터 등 세계적인 음악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지. 


가끔 믿어지지 않은 순간도 있다. 삶은 아무도 몰라.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매일 가방 하나 들고 거리에서 바나나 사 먹고 맨해튼에 가서 종일 놀다 보니 베테랑이 되어가. 내가 뉴욕에 올 때 아는 거라곤 줄리아드 스쿨이 뉴욕에 있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 백야에 출연하는 미하일 바리니시코프 발레를 보고 싶다는 것 정도.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은 3차례나 봤는데 다시 보고 싶다. 미하일 바리니시코프는 만날 기회를 놓쳐 아쉽고 맨해튼에 그의 이름으로 된 공연장이 있고 좋은 공연이 열리나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이 열려서 좋고 무료 공연도 많아서 더 좋다. 


대학 시절 내가 뉴욕에 오게 될 거라 상상도 못 하고 유럽에만 푹 빠져 지냈는데 어느 날 뉴욕에 와서 인생 2막의 문을 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두 가지 색채를 갖는 뉴욕에 사랑과 애증이 교차하지만 뉴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정말 많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 음악 없이 세상 살면 앙꼬 없는 찐빵 같을 거야. 


오늘은 누가 내 슬픈 영혼을 위로할까. 오늘은 어쩌면 이작 펄만을 만날지 몰라. 작년 줄리어드 스쿨 모세 홀 내 뒷자리에 앉은 이작 펄만 노부부가 생각난다. 평상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온 이작 펄만. 그분이 누군지 모른 사람이라면 감히 이작 펄만이라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평범한 뉴요커. 그분들 목소리를 들으니 그분들 삶이 더 가까이 전해져 왔다. 아주 마른 체형의 이작 펄만 부인도 바이올리니스트.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 부부를 바로 내 옆에서 만날 줄이야.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참가했던 Meadowmount School of Music 음악 캠프에서 이작 펄만 부부가 만났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워. 인연이 뭘까. 한국에서 음악 동아 잡지에서만 본 줄리아드 스쿨과 수많은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는 줄리아드 스쿨이 내 친구로 변하다니 믿어지지 않아. 





12월 12일 아침 글쓰기 하다./ 12 월 11일 일상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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