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금요일
맨해튼에서 철새처럼 이리저리 이동했다. 맨해튼에서 철새로 변하다니.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쓰기를 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그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서 다시 연결하려고 시도했지만 역시나 실패. 다시 시도 역시 실패. 수 차례 더 반복하다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가끔은 포기한 게 행복인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능했다. 이를 어쩌랴. 빨리 포기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시간만 허비했어.
아름다운 하프시코드 음색 떠올리게 하는 11월. 이제 가을이 멀리 떠나갈 거 같아 붙잡고 싶은 계절. 노란 은행잎들이 거리에 뒹구는 계절. 인터넷을 찾아 맨해튼에서 삼만리. 북 카페에도 갈 수 있는데 난 링컨 센터 The David Rubenstein Atrium에 갔다. 무료 인터넷이 제공되니 좋다. 링컨 센터와 뮤지컬 할인 티켓도 파는데 전과 달리 사람들이 아주 많아 복잡해 놀랐다. 할러데이 시즌이라 여행객들이 더 많아서 그런가. 사실 뉴욕에 사는 로컬들은 뮤지컬을 보고 싶지만 비싸서 볼 수 없다는 말도 자주 듣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여행객들이 사랑한다.
뮤지컬 러시 티켓은 40불 대라서 메트 오페라에 비하면 얼마나 비싼지. 그것도 극장에 가서 박스 오피스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그날그날 사정에 따라 달라서 항상 러시 티켓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갈수록 머나먼 님이 되는 뮤지컬. 아들은 오페라보다 뮤지컬 공연이 더 좋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뮤지컬 공연 본 지도 꽤 오래되어간다. 뉴욕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러시 티켓 판 지도 몰라 비싼 티켓을 구입해 보곤 했고 <에비타> 뮤지컬은 1인 100불씩이나 줬는데 공연이 형편없어서 슬펐다. 아, 실수였어.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러시 티켓을 알게 되었다. 정보가 얼마나 귀중한 세상인가.
아, 다시 철새처럼 이동을 했다. 링컨 센터에서 사운드 체크한다고 나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어. 링컨 센터를 나와 콜럼버스 서클 지나며 하늘 높이 치솟는 빌딩 보며 왜 내가 살 집은 없는 거야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먹는 순간 왜 하필 미술 평론가와 눈이 마주쳤던 말인가. 젊은 여자랑 걷던 그도 어색했던지 시계를 보는 척하더라. 가난은 숨길 수 없나 봐. 그런데 왜 사과를 먹는 순간 그를 만난 거야. 몇 달 전 미드 타운 카페에서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그가 말을 걸어서 서로 알게 된 분인데 가끔씩 만나곤 한다.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빌딩 근처에 어린 왕자를 집필한 생떽쥐베리가 살던 아파트도 있다. 정말이지 그가 뉴욕에서 <어린 왕자>를 집필했다고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금요일 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 날. 상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조이스 디도나토가 출연하니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찾아왔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
Riccardo Muti, Music Director and Conductor
Joyce DiDonato, Mezzo-Soprano
BIZET Roma
BERLIOZ La mort de Cléopâtre_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RESPIGHI Pines of Rome
비제의 '로마' 곡이 무척 예쁜데 그 가운데 3악장 연주가 가장 좋았다. 바이올린 부분이 악보가 무척 어려워 단원들 연주가 어려울 거라고 말하는 아들.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부른 베를리오즈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잘 불렀지만 오페라처럼 아주 감명 깊지는 않았다. 마지막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곡 1악장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891년 창단되었다고 하니 놀랐다. 역사도 꽤 깊다. 시카고 하면 바람의 도시. 시카고 미술관이 명성 높고 오바마 대통령이 데이트하던 곳이라고 들었다. 또 자고 일어나면 살인이 일어나는 무서운 도시란 말도 들었지만 한 번도 방문하지 못하고 세월만 흘러간다.
카네기 홀에 공연 보러 Oklahoma (오클라호마)에서 온 유대인 여의사를 만났다. 전직 발레리나 출신인데 나중 의사로 커리어를 변경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워. 3대째 의사 집안이야. 할아버지 할머니도 의사. 아버지도 의사. 할아버지는 이비인후과 전문이고 할머니는 1921년 존스 홉킨스 의대를 졸업. 당시 여자로서 최초 졸업생이었고 라커펠러 펠로우쉽을 받았는데 나중 여자가 결혼했다고 펠로우쉽이 취소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슬픈가. 세상에. 100 여전 뉴욕도 성차별이 심했구나. 할아버지 소유의 맨해튼 빌딩이 있는데 대공황 시절 유지비가 비싸서 힘들었다는 소식도 들어서 놀랐다. 여의사 몸매는 아직도 발레리나처럼 아름답고 미모도 영화배우 같아. 남편은 은퇴한 발레리나. 아버지도 방사선과 의사. 부모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셨다. 아드님은 뉴욕 버룩 컬리지에서 파이낸스를 전공하는데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 중이고 딸은 박사 학위 받고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일한다고. 가장 놀란 것은 발레리나에서 의사로 커리어를 바꿨다는 점이다. 발레 공부할 때 힘든 트레이닝받아서 힘든 의사 트레이닝도 받을 수 있었단 의사. 내일은 오클라호마 집으로 떠나고 은퇴하면 뉴욕에 돌아와서 오페라, 발레를 보고 싶다고. 공연 예술 사랑하는 분은 뉴욕이 사랑스러운 도시다. 뉴욕 시티 센터에서 처음으로 댄스 공연을 보고 6세 때 발레 공부를 시작했다고. 유대인 여의사 집안 선조는 오래오래전에 미국에 이민을 오셨다고. 그러니까 이민 5세 정도 되나 짐작을 한다.
오페라와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조도 만났다. 어제 메트에서 라보엠 공연을 감상했는데 미미로 출연한 홍혜경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그녀 나이가 60세라고 하니 믿지를 않아. 마치 30세 같다고 말했다. 작년에 30편을 감상하고 이번 시즌 9편을 감상했다고. 롱아일랜드 Port Washington (포트 워싱턴)에서 자랐다고 하니 놀랐다.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에 살 적 가끔씩 찾아가곤 했다. 구겐하임 저택이 있는 Sands Point Preserve는 뉴욕 명소에 속하고 포트 워싱턴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이스트에그(East egg)에 속하는 Sands Point Preserve. 바다와 숲 모두 볼 수 있어서 좋고 단풍으로 물든 숲이 아름다운데 10살 된 차를 팔아버린 후 머나먼 님이야. 택시를 타고 가기엔 택시비가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나 불편한 곳. 롱아일랜드는 차 없이 생활이 불편하다.
맨해튼 음대 졸업한 조나단 할아버지와 수잔 할머니도 만났는데 아들이 수잔 할머니 얼굴 보고 깜짝 놀랐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나니 서로 아는 처지인데 할머니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롱아일랜드 양로원이 생각난다고. 70대인데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여 슬펐다.
음악을 무척 사랑한 중년 남자는 휴식 시간에 내게로 찾아와 말을 걸었다.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파크와 거버너스 아일랜드와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남자인데 지난번 카네기 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이틀째 상임 지휘자 대신 젊은 지휘자가 연주했는데 난 그 공연이 전날보다 더 좋다고 하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Vasily Petrenko 젊은 지휘자가 단 한 번 리허설을 하고 지휘했다고 하니 대단한 지휘자야. 뉴욕 명문학교 스타이브센트(Stuyvesant High School)를 졸업한 사진가는 이스트 빌리지에서 열린 공연이 좋다고 초대를 하셨다. 언젠가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이 그에게 3만 불 정도 하는 카메라 구입하라고 하니 "돈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했던 분. 뉴욕도 어렵게 사는 사람이 참 많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명문학교 졸업해도 어려우면 유학생과 이민자에게는 얼마나 높은 벽인가.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피아노 공연이 열려서 방문했다. 사랑하는 베토벤과 쇼팽곡을 기대하고 갔는데 바흐 파르티타 곡이 가장 예뻤다. 카네기 홀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예정이라 줄리아드 학교 공연을 볼지 말지 망설이다 갔는데 꽤 좋은 피아노 연주였다. 피아노 공연 보고 카네기 홀에 가려고 링컨 센터에서 지하철에 탑승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복권을 긋고 있더라.
지하철역에서 나와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가는데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주황색 별들이 반짝반짝거렸다. 어디서 별들이 쏟아진 거야. 아, 벌써 할러데이 시즌이라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늘 여러 가지 색들의 별들이 빛나는 곳. 별들과 이야기 나누며 길을 걸었다. 세월 빠르구나. 벌써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