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내게 재주가 있다면 '나답게'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내 생각대로 삶을 만들어 간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행복을 찾는다. 아무리 하고 싶고 남이 좋다고 해도 형편에 맞지 않으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내 판단을 믿고 따랐다. 그러다 보니 충돌도 많았다. 소신대로 살았던 추억들을 모아 본다.
#1.
늦게 바이올린과 첼로 레슨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대학 졸업 후 교직 발령을 받아 첫 급여를 받은 후 악기점에 달려가 연습용 바이올린을 사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왜 늦은 나이 그 힘든 바이올린을 배워?라고 자주 말했다. 남이 뭐라 하든 말든 내 인생이니 내 마음으로 살았다. 내가 좋아서 악기 레슨을 받는 것을 주위에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2.
아주 오래전 신혼의 단꿈을 위해 살림을 마련할 때 침대 커버와 베개 등을 백화점에서 구입하려니 가격이 너무 비쌌다. 마음에 들지만 예산 초과라 고민하다 시장으로 달려가 마음에 드는 천을 골라 침대 커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커튼도 마찬가지였다. 브랜드가 있는 커튼은 너무 비싸 내가 직접 천을 골라 주문했다. 침대 커버와 커튼 비용이 많이 절감되었다. 대학 시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일본 인테리어 잡지도 많이 보았다.
#3.
두 자녀 양육과 교육을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 있을 때 주위에서 과외해서 돈 벌고 편하게 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비싼 고액 과외하면 돈 많이 버니까 얘들은 과외 선생에게 맡기고 삶을 즐기란 말이었다. 그런데 내 뜻은 달랐다. 내 자녀 교육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고 싶었다.
# 4.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서 지내니 친구들에게 자주 연락이 왔다. 함께 쇼핑도 하고 카페도 가자는 눈치였다. 그런데 난 항상 바쁘기만 했다. 두 자녀 교육 뒷바라지만으로 바빴다. 또 백화점에서 1주일에 한 번 쇼핑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 돈도 시간도 없으니 쇼핑이 즐겁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쇼핑을 했다. 거절을 하면 친구가 싫어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상황에 맞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았다.
#5.
두 자녀는 초등학교 때 악기 교육, 미술, 발레, 태권도, 검도 등의 수업을 받았다. 주위에서 고액 과외를 시킨다고 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모임에 가면 자녀들이 창의력을 위한 특별 과외를 받고, 과학 과외를 받고,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언제나 내 방식대로 교육을 했다. 나중 빈 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님과 인연이 되어 레슨을 받았고 우리 가족에게 빈으로 유학을 오라고 권유하셨는데 뉴욕에 와서 살고 있다.
#6.
특별한 과정을 밟는 아이 아빠 뒷바라지는 힘들었다. 수 십 년 뒷바라지 끝에 드디어 빚을 갚고 경제적인 안정에 이르자 주위 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전화를 해서 도움을 달라고 호소를 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500만 원씩 보험을 들어달라고 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매달 500만 원씩 보험료를 내는 것은 우리 집 형편과 거리가 멀어서 거절했다.
#7.
대학 시절 세계 여행 꿈을 꾸었다. 어느 날 이뤄질지 몰랐다. 그때는 해와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주위 친구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꿈을 먹고 자랐다. 세월이 흘러 흘러 흘러서 어느 날 런던, 파리, 베를린, 하이델브루그,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동경, 시드니 등 미지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8
인생은 끝없는 배움이다. 직장 생활할 때도 두 자녀 교육할 때도 나만의 개인 시간을 찾기가 참 어려웠다. 그럼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불어와 중국어와 영어 회화 수업을 받고 새벽에는 운동을 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첼로 레슨을 받고 두 자녀 미술학원에서 수업받을 때 나도 함께 데생 수업을 잠시 받았다. 그림을 좋아하니 유화 수업도 잠시 받았다. 삶이 복잡하지 않았다면 계속 그림 수업을 받고 창작 활동을 했을 텐데 첼로가 거실에서 부서지고 모든 수업을 중지하고 난 수 천 마일 날아서 멀리 떠나왔다. 그때처럼 레슨을 받지 않지만 뉴욕에서 수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보곤 한다.
# 9
어느 날 뉴욕에서 인생 2막을 열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뉴욕에 왔다. 아이 아빠 뒷바라지가 참 힘들기만 했다. 드디어 빚을 갚고 경제적으로 안정될 무렵 나의 고별 선언을 듣고 부모님과 친구들과 주위에서 충격을 받았다. 무에서 시작한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이 부러워한 자리에 도달했을 때 뉴욕으로 떠난다고 하니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대학 시절 꿈꾸던 보물 도시란 것을 알고 놀랐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 지하철만 타고 맨해튼에 가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카네기 홀과 줄리아드 학교가 나의 아지트로 변했다. 매일 천재들의 공연을 보고 기뻤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니 먼 훗날 내 인생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