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서 비슷한 경험 지닌 동포들과 모여 살고 싶어"
2013-06-01
1968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유학길에 올랐던 김기영(72) 씨는 요즘 제2의 인생을 계획하며 '코리안 드림'을 꾸고 있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비즈니스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워싱턴한인복지센터에서봉사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그는 2016년 인천 송도 재미동포타운이 완공되면 하던 일을 점차 정리하고 아내 주정해(68) 씨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살 계획이다.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모처럼 모국을 찾은 김씨는 1일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모국 행을 결심하기까지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사실 한국에 살까 하는 생각은 예전에도 했지만 열심히 사느라 어눌해진 한국말, 나도 모르게 밴 미국식 관습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정서적으로 비슷한 동포들이 모여 살게 되면 그런 걱정은 좀 줄어들지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전역까지 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지난 45년간 미국에서 많은 것을 이뤘다.
특히 우리나라의 육군사관학교와 같은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계급인 대령이 된 아들 존 김과 매사추세츠대 영문과 교수가 된 딸 수지 김은 커다란 자랑이다.
"아이들이나 저나 백인들한테 안 지려고 정말 열심히 살았죠. 그러다 보니 어느순간 제 자신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라고 여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아닌 생활로만 보면 저는 아직도 틀림없는 한국인이더라구요."
사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은퇴를 염두에 두고 도시 외곽에 있는 일종의 '실버타운'을 알아봤다. 은퇴 이후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하게 소일거리를 하며 지낼 만한 동네들은 미국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고 했다.
성실하고 일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은 한인이지만 은퇴 이후엔 서로 다른 생활방식이 도드라진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김씨 주변에는 은퇴 이후 이웃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처럼 지내고 다시이사를 하려고 해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폭락한 집값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꽤 있었다.
김씨는 "재미동포타운에선 젊은 시절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이들이 모여 살 테니 든든할 것 같다"면서 "가서 그동안 못 봤던 친구들도 찾아서 만나고 구석구석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구경도 다니고 싶다"며 웃었다.
"은퇴를 앞둔 이민 1세대들이 많이 있고 상당수는 모국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동포타운 만든다고 하는 사업가들이 여럿 있었지만 중간에 사업이 엎어져 실망하곤 했지요. 이번에는 꼭 제대로 만들어져서 동포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줬으면 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