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수 Aug 28. 2020

이민가면 만사 ‘오케이?’

   
  2003.09.22 


이민가면 만사 ‘오케이?’

해외 이주의 그늘, 고국으로 돌아오는 역이민자들


한반도 이남을 강타한 이민 열풍 속에서 또 다른 역풍이 소리 없이 불고 있다.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를 탔던 이민자들이 다시 짐을 싸들고 고국행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무엇이든지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다. 정착에 성공해 더 좋은 환경을 일구고 성취한 이민자들도 많지만,


반대로 한국에서 보다 못한 삶을 살거나 향수병에 시달려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이민자들은 “떠날 때는 이민국이 천국 같았다.


하지만, 떠나고 보니 지긋지긋한 한국이 그리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바닥 헤매다 지쳐 돌아왔다”

2000년 2월 가족과 함께 미국 노스타코다로 떠났던 이씨(36 서울 상계동)는 올해 4월에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으로 가기 전 한국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던 이씨는 자녀 교육과 경제적 곤란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이민을 결심했다.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고생을 좀 해도 아이에게 더 좋은 여건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직장 동료가 2명이나 이민을 떠났는데 자극이 된 건 사실이다. 왠지 나만 이곳에 남아 아등바등 사는 것 같았다. 어떤 환경이라도 지금보다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에서 이씨는 식품가공공장에 취업했고 아내는 식당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더욱 힘든 것은 인종차별이었다고 김씨는 고백한다.


“돈 없는 유색인종에 언어까지 통하지 않으니까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김씨가 미국 정착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는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때문이었다.


이씨는 서울에서 가져온 재산과 미국에서 모은 돈을 몽땅 털어 조그만 잡화상을 차릴 계획이었다. 영주권을 취득한 이씨는 2001년 10월에 계획했던 사업을 착수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미숙한 이씨는 교포사회를 통해 이민 초기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에게 창업 절차를 맡겼다. 하지만 이씨는 믿었던 동포에게 사업자금을 사기 당했다. 이씨는 당시의 심정을 “죽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이씨는 빌딩청소와 사립고등학교 잡부 등을 전전해야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직장에서도 자리잡기 어려웠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고국이 그리웠지만 돌아와도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선뜻 역이민을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닥도 너무 바닥이니까 미국 생활에 진절머리가 났다”
는 이씨는 현재 한국에서 떡 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이민 후유증이 크다”는 이씨. 하지만 “말이 통하니까 그래도 훨씬 편하다”며 이씨는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이민자들의 천국은 없다”


뉴질랜드 이민생활 7년차인 또 다른 이씨(39)는 “이젠 안정도 찾았고 나름대로 이 곳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고국의 소박한 산천과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대폿집이 생각날 때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며,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기회가 적은 곳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여러 역이민자들을 곁에서 지켜봤다는 이씨는 “한국에서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은 적응을 잘 못한다. 한국에서는 사장이고 이사지만 여기서는 청소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는 한국으로 복귀하고 싶어하는데 여자는 이민국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이혼해서 아내와 자녀만 남고 남편만 역이민하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천당 보다 숫자 하나 부족하다’는 의미의 ‘999당’으로 불리는 ‘이민자들의 천국’ 캐나다는 최대 이민국인 만큼 역이민자도 가장 많다.

역이민 경험을 나누는 사이트 ‘영민 아빠’의 개인 홈페이지(http://myhome.naver.com/jschoi33) 게시판에서 가족과 함께 4년이상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익명의 한 네티즌은 “한국체질이어서 이 곳에서는 못 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이들이 소수민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역이민을 고민하고 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백인의 캐나다와 이민자의 캐나다는 너무나 다르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방학인 아이들과 단 하루도 여행갈 여유가 없는
이 삶이 과연 행복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바보’라는 아이디의 이민자는 “비지니스라고 시작은 했지만 가진 돈 다 날리고 투자한 돈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다. 돌아가기에도
정말 낙오자 같아 창피하고 벤쿠버에 그냥 있자니 앞날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도피성 이민은 실패에 이르기 쉬워 역이민을 고민하는 이민자나 이미 고국으로 돌아온 역이민자들은 대부분 이민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 나름의 이유들은 있지만 한국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나 이민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냉철한 판단을 막는 경우가 많다. “수년간 고민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민하고 보니 당시 이민병에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며 후회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은 불완전한 국가지만 어느 나라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실망도 그만큼 크다.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친다는 도전의식은 바람직하지만 도피성 이민은 실패에 이르기 쉽다. ‘빛’ 뿐만 아니라 ‘그늘’까지 보는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이민 희망자라면 “이민국에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면 한국에서는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민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민 가려면 이것만은 명심해라


언어 익힌 후 떠나라

이민국의 언어가 능숙하면 능숙할수록 정착에 성공할 확률은 더 커진다. 의사소통이 서툴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 능력을 전달하고 발휘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고지서 등이 날아왔을 때도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언어를 숙달하고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가까이에서 도와줄 수 있는 현지인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이민을 결정했더라도 언어가 미숙하면 숙제를 돌봐주거나 교사를 만나 상담하는 등의 자녀 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기 힘들다. 친구나 이웃을 사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외로움으로 인한 향수병과 사회적 고립감은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한국은 잊어라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에서 익숙해진 생활 습관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민에 실패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에서의 사회적 성취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이민자일수록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고학력 고위직 전문직 고소득자였다고 해도 이민국에서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영세 자영업을 하는 ‘바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 교수였는데 이 따위 일을 할 수는 없지’라는 마음가짐으로는 백수로 시간을 보내기 십상이다. 문화적인 관습도 마찬가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은 금물이다. 너무 많은 돈을 갖고 떠나도 정착이 어렵다. 여유돈이 있으면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독한 마음먹어야 성공한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해라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이민은 실패 확률이 가장 높은 케이스. 장점만을 부각시킨 소문을 그대로 믿고 이민을 즉석해서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업체의 설명이나 불확실한 자료가 아닌 실질적인 정보를 수집해야 자신에게 맞는 조건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민을 가기 전에 대상 국가 선정을 비롯, 이민 방법에 대해 냉철히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둘러 재산처분을 하고 수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이민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면서 실상을 파악하는 ‘실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안전하다.
 일자리를 미리 알아보거나 비즈니스 환경은 어떤지 철저히 살펴보고 떠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