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도시 뉴욕의 팔월은 축제로 시작해 축제로 끝난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가 찾아와 뉴욕이 멈춰버렸다. '잠들지 않는 뉴욕'이란 별명을 갖는 도시가 잠들어 버렸으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24시간 운행을 하던 뉴욕 지하철도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 운행을 중단했다.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매일 축제의 분위기에 퐁당 빠져 지냈다. 대학 시절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My Way' 노래를 자주 들었는데 뉴욕에 오니 'New York, New York'이란 노래가 더 가깝게 들려온다. 뉴욕에 와서 사니까 그 노래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대학 시절 뉴욕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으니 뉴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El Condor Pasa ' 노래를 부른 사이먼과 가펑클도 뉴욕에서 활동하고 센트럴파크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하니 조금 일찍 왔더라면 직접 공연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뉴욕에서 활동한 것도 모르고 왔다. 캐나다 가수 레너드 코헨 노래도 자주 들었는데 그가 뉴욕에서 활동한 줄도 몰랐다.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 본 마리아 칼라스도 뉴욕에서 활동해서 놀랐다. 이민 보따리 몇 개 들고 왔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뉴욕이 대학 시절 꿈꾸던 도시란 것을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던 가수들이 활동했다는 것도 알았다.
링컨 센터에서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발레, 실내악 공연 등을 감상할 수 있고 카네기 홀에서도 위대한 대가들의 공연이 열려서 공연을 보러 뉴욕에 여행 온 분도 계시단 것을 카네기 홀에서 만난 낯선 여행객을 통해 들었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뉴욕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은 몰려오고 자본가들이 투자를 하니 맨해튼은 갈수록 비싼 도시가 되고 렌트비가 하늘 같으니 거리 모퉁이를 돌면 가난한 홈리스를 만나게 된다. 실직자 되면 비싼 렌트비 못 내면 쫓겨나니 홈리스 되기도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로 갈수록 더 많은 실직자가 쏟아지니 얼마나 슬픈가. 또, 가난한 동네는 감염자가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되고 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있다.
<셰일즈 맨의 죽음>을 집필한 아서 밀러도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집필한 트루먼 커포티도 오래전 맨해튼 렌트비가 너무 비싸니 브루클린 하이츠에 살았는데 오늘날은 그 동네 역시 비싼 곳으로 변했다. 뉴욕의 빈부차는 오늘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한 도금 시대(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고 1873년에 시작되어, 불황이 오는 1893년까지)도 빈부격차가 심했단 것도 늦게 알았다. 가진 거 없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이 어찌 쉬울까. 언어도 문화도 지리도 낯선 곳에서 정착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류층이 상류층으로 변하는 건 모두가 이루는 꿈은 아니다.
처음 뉴욕에 온 이민자들 가운데도 초 상류층이 있었고 반대로 가난한 이민자들도 있었다고 뉴욕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박물관에서 보고 놀랐다. 가난한 사람들 식사는 형편없었지만 앨리스 아일랜드에서 시행하는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하니 나름 영양분에도 신경을 썼다는 글을 읽고 웃었다. 반대로 부자 사람들 식사는 한 끼에 약 1000불이라고 했던가.
코로나 위기로 뉴욕에도 봉쇄령이 내려지자 한동안 플러싱에서 답답한 생활을 하다 지난 7월 20일 경제 재개 4단계에 들어서자 맨해튼 나들이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코로나 위기로 뉴욕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궁금했다. 코로나 감염증이 무서워 나들이가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루 한잔 핫 커피를 마시며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 낯선 동네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사랑하니 늘 브루클린 카나지가 궁금했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방문했는데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플러싱 보다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뉴욕 정착 초기 가난한 이민자가 많이 사는 플러싱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브루클린 낯선 동네를 답사하니 플러싱도 꽤 좋은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 맨해튼이 너무 비싸니 브루클린도 점점 변화의 물결이 거세고 브루클린 덤보와 브루클린 하이츠와 윌리엄스버그 등은 꽤 비싼 동네로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냄새 풍기는 브루클린 동네도 많은 것도 늦게 알았다.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베드포드 스타이브센트도 역시나 가난하고, 뉴욕 작가 폴 오스터가 사는 선셋 파크도 인터스트리 시티 말고 볼게 별로 없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앤서니 파우치가 태어나 자란 브루클린 벤슨허스트 역시 평범한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다. 브루클린도 뉴욕시에 속한다. 그러니까 뉴욕시 전부가 화려하지 않고 지역차가 아주 심하다. 서울에서 살다 브루클린 가난한 동네를 보면 실망할지 모른다.
가난한 한인 작가 강익중이 무명 시절 렌트비 저렴한 차이나타운에서 지내며 활동하고 커피도 식사도 헤어커트도 해결했다고 한다. 팔월 그가 즐겨 찾던 커피숍에 방문해 그가 즐겨 마셨던 커피도 마시며 차이나타운도 거닐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이룬 작가를 생각했다. 비싼 뉴욕이라 렌트비와 생활비 버느라 시간이 없어서 지하철 안에서 3인치 작품을 만들며 꿈을 만들어 간 강익중도 대단한 작가다. 재능 많은 사람이 태양 같은 정열로 노력하면 분명 꿈이 이뤄질 것이다.
코로나로 한동안 봉쇄령이 내려져 아주 오랜만에 브루클린 코니 아일랜드와 브라이튼 비치에 가서 산책하다 문득 뉴욕에서 활동한 작가 오헨리(1862-1910)가 떠올랐다. 그의 소설집 배경에도 코니 아일랜드가 나온단다. 사실 그가 뉴욕에서 활동한 작가란 것도 모르고 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난한 연인들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필한 곳도 뉴욕 맨해튼 그래머시(Gramercy)에 있는 피츠 태번이다. <마지막 잎새>도 잘 알려진 명작이고 그가 집필한 또 하나의 책 <경찰관과 찬송가> 단편 소설도 꽤 재밌게 읽은 추억이 있다. 너무나 가난한 노숙자는 추운 겨울을 차라리 감옥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갈 거라 생각하지만 자꾸 뜻대로 되지 않는데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를 듣고 뉘우치며 떳떳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맹세한 순간 경찰에 붙잡혀 징역 3개월을 선고받는다는 내용이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후 뉴욕에 와서 오헨리가 뉴욕에서 활동한 작가였고 그의 소설 배경 역시 뉴욕이란 것을 깨달았다. 뉴욕에 와서야 추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도 알고 거리거리 모퉁이마다 홈리스가 보여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뉴욕은 변함없이 노숙자가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충격적이고 씁쓸하다.
뉴욕 맨해튼에는 귀족들도 많이 산다. 오죽하면 <파크 애비뉴의 종족들> 책이 출판되었을까.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는 뉴욕 롱아일랜드 햄튼에 별장이 있고 주말이면 별장을 찾는다고 한다. 자녀를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고액 과외를 시키는 것은 뉴욕도 한국과 같다. 지금 지구촌은 코로나 전쟁 중, 상류층은 휴양지에서 안락한 도피 생활을 하고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렌트비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라니 참 슬픈 일이다.
또, 미국은 국민 의료 보험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아프면 죽는다는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의료 보험도 없는 경우가 많다. 무보험일 경우 응급차를 부르면 2000불이 넘는 나라. 며칠 병원에 입원하면 수 만불 경비가 나온다. 저소득층 1년 수입보다 병원비가 더 나오면 어떻게 살까.
코로나로 부자 나라 미국과 뉴욕의 실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로 수많은 기업이 무너지고 수 백 년 지난 백화점도 파산을 하고 소규모 비즈니스 운영도 어려워 미국을 떠난 교포들도 꽤 많다고 한다. 비싼 의료비도 공포고 비싼 렌트비와 물가 역시 공포니 뉴욕에서 버티기가 힘들어 떠난 사람들도 많을 거 같다.
미국이 가난한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고 뉴스에 보도되면 미국에 사는 사람은 모두 잘 살구나 착각을 한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이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환상이 무너지려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문제도 많다. 미국 대학 학자금 빚도 천문학적이라고 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른다. 미국 대학 학비는 엄청 비싼데 빚내서 공부한 학생들이 무척 많다. 수 십 년 동안 대학 학비는 어마어마하게 인상되었고 반대로 사람들 생활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빈부차가 심하다. 그뿐이랴. 마약 문제와 총기 문제도 남아 있고 여전히 인종 차별도 존재한다. 부자 나라 미국에 이민 오면 모두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것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다. 소수는 꿈은 이루지만 인간적인 대우는커녕 거리 바닥에서 뒹굴며 지낸 사람도 많은 슬픈 도시 뉴욕. 대공황 시절 뉴욕을 떠난 사람도 많았단다. 그 시절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는 고독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독한 뉴요커가 많이 산다. 아들 친구 엄마 말처럼 위를 봐도 끝이 없고 아래를 봐도 끝이 없는 뉴욕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