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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Aug 31. 2020

그들은 왜 ‘맨해튼’에 사는가?

2017.02.20



"New York State of Mind”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이다. “뉴욕의 정신 상태”? 그건 대체 뭘까? 그런 게 과연 있을까?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불러 심사위원의 극찬을 이끌어낸 미국 뉴저지주의 소녀는,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이 노래가 빌리 조엘이 뉴욕을 떠나 있을 때 뉴욕을 그리워하면서 쓴 노래라는데 자신은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은 맨해튼이 바라다보이는 허드슨강 너머 뉴저지주에 사는데, 맨해튼을 바라볼 때면 저기엔 누가 살까? 나도 언젠가 저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맨해튼이 너무나 좋다는 것이다.

그럴까? “뉴욕의 정신 상태”라는 게 과연 있을까? 있다면 그건 우리가 ‘뉴요커’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뉴욕의 ‘맨해튼(Manhattan)’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아닐까?

  

조지워싱턴 대교


사실은 나도, 맨해튼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다. 나 역시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으로 매일 출근하지만 뉴저지주에 살고 있다. 이침마다 뉴저지주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허드슨강변의 도로를 타고 내려와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다시 맨해튼 서쪽 강변도로를 달려서 출근을 한다.



맨해튼에선 살 수 없다. 회사에서 주는 주택보조비는 맨해튼에 집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뉴저지주에 집을 얻어 아침마다 만 5천 원에 달하는 조지 워싱턴 다리 통행료를 내고 출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훨씬 싸게 먹힌다. 맨해튼의 집값이 워낙 천문학적인 액수다 보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주고 저 맨해튼에는 누가 사는 걸까?



브로드웨이 뮤지컬 캐롤 킹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편과 사이가 나빠진 캐롤 킹은 남편에게 맨해튼에서 교외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한다. 가서 전원생활도 즐기고 하면 사이가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말이다. 그러자 남편이 되묻는다. “교외? 어디? 뉴저지?” “안돼! 절대 안 가! 뉴저지는 절대 안 가!”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뉴저지에 사는 사람들이 민망해 더 웃었을지 모른다. 나도 웃었다. 이미 “교외? 어디?”라고 말했을 때부터 남편의 그다음 대사를 짐작했다. 그렇다. 뉴요커들에게 맨해튼은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주고도 살아야 될 가치가 있는 곳이고, 뉴저지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다. 한 뉴요커는 뉴저지 운전면허증을 받고 뉴저지 번호판을 자동차에 달고 싶지 않아 뉴욕에 산다고 말했을 정도다.




뮤지컬 캐롤 킹


맨해튼에서 다리, 터널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의 뉴저지. 과거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 너머 뉴저지 일대는 맨해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맨해튼의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했다.



나무로 뒤덮인 거대한 정원(Garden) 같다고 해 ‘Garden State"(정원 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뉴저지주 사람들을 뉴요커들은 촌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같은 돈을 벌고도 맨해튼 대신 뉴저지에 산다면, 돈과는 맞바꿀 수 없는, 그래서 돈은 얼마든지 희생하고도 얻어야 하는 맨해튼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촌 사람들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뉴욕 One57 빌딩


수천억 원대 아파트, 수억 원에 달하는 월세



대체 맨해튼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 걸까? 지금까지 팔린 맨해튼의 가장 비싼 아파트는 ‘원57’의 꼭대기 펜트하우스로 1억 50만 달러, 한 채에 우리 돈 약 천2백억 원짜리다. 우리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 펜트하우스는 최초 분양 당시 중국인에게 팔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만간 그 3배 가까운 가격의 아파트가 나온다고 한다. 지난해 한 아파트개발업체가 새로 짓겠다고 발표한 센트럴파크 남쪽 70층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는 4개 층 16개의 침실에 거대한 테라스, 360도 조망을 갖추고 있는데, 아파트개발업자는 이 펜트하우스의 가격을 2억 5천만 달러, 우리 돈 약 3천억 원으로 신고했다.



현지 언론들은 세계 최고가의 아파트가 될 이 펜트하우스가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지의 외국 부호 손에 넘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건물 또한 우리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무실은 꽤 비싼 주거, 상업용 건물들이 위치한 콜롬버스 서클 근처에 있지만, 일대의 가장 오래되고 허름한 빌딩 중 한 곳에 들어서 있다.



이 단적인 사실들이 보여주듯 맨해튼의 비싼 아파트들은 진정한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물론 전 세계의 부자들이 맨해튼의 비싼 아파트들을, 부를 축적하거나 과시하거나 또는 숨기려는 수단으로 사들인다.



그들은 때로 살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비워놓기도 할 것이다. 일례로 미국 동부 부자들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햄튼 같은 해안 부촌에 저택 하나, 플로리다 같은 따뜻한 남쪽에 겨울 별장 하나, 맨해튼에 아파트 하나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한단다. 그들에게 맨해튼은 사는 곳이 아니니,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들의 불빛은 밤마다 꺼져있기 일쑤다.



이런 고급 아파트들은 월세도 천문학적이다. 맨해튼의 가장 비싼 월세 아파트의 한달 월세가 5억 7천만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자들만 맨해튼에 사는 건 아니다. 지난 2010년 통계에서 맨해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유색인종이었고 특히 히스패닉이 25%, 흑인이 13%였다. 물론 모든 백인이 부자고 모든 유색인종이 가난하진 않지만 미국에서 백인이 평균적으로 더 부자라는 건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또한 맨해튼의 많은 아파트들이 월세 제도로 운영된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저축을 해 돈을 모으기 어려운 미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맨해튼의 아파트를 소유하기는 어렵다. 맨해튼의 침실 한두 개짜리 아파트가 보통 수십억 원대다. 하지만 연봉이 우리 돈 1억도 안되거나 몇 억에 불과한! 월급쟁이들도 맨해튼에 많이 살고 있다.



맨해튼 미드타운 변두리의 스튜디오 아파트 월세가 보통 우리 돈 3백만 원에 달한다. (한국에서 흔히 원룸이라고 부르는 방 1개에 모든 게 다 들어있는 아파트를 미국에선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침실이 1개 있으면 그 가격의 최소한 1,5배, 침실이 2개면 그 가격의 2배는 줘야 한다. 침실 3개짜리 비싸지 않은 아파트 월세가 천만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연봉이 몇 억에 불과한, 또는 1억도 안되는 월급쟁이들도 맨해튼에 산다. 월세는 물론 식사비부터 교통비까지 모든 게 다 비싸고 거기에 휴가, 문화생활까지 하려면 저축 한 푼 못하는 맨해튼 생활을 그들은 한다. 나는 절대로 뉴저지 운전면허증은 받을 수 없다고 소리치고 캐롤 킹의 뉴저지 혐오 장면에 깔깔거리면서 한 편으로는 다음 달 월세 걱정을 하면서도 그들은 맨해튼에 산다.



그들은 왜 ‘맨해튼’에 사는가?



한 뉴요커가 내게 물었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1주일 중 언제 파티를 하는 줄 아느냐는 것이다. 내가 금요일? 토요일? 하고 되물으니, 일요일이라고 알려준다. 금요일과 토요일엔 코네티컷과 뉴저지에서 넘어온 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촌 사람들이 없는 일요일에 파티를 한다는 거다.



그렇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일요일에 파티를 해도 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대중교통으로 운전을 하지 않고 집에 돌아갈 수 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식당과 바들이 모여 있으니 일요일에도 마음에 여유가 있다. 맨해튼에 살면, 맨해튼의 모든 문화생활을 월화수목금토일 언제든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맨해튼에는 모든 게 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들, 세계 최고의 발레, 오페라, 필하모닉, 뮤지컬이 있다. 공원이 지척이고, 전 세계의 모든 음식들을 즐길 수 있고, 술 마실 곳들도 지천이다. 전 세계 명품점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상점들도 들어서 있다. 게다가 거의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로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맨해튼에는 정말 모든 게 다 있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에게 왜 굳이 그 비싼 렌트비를 주고 맨해튼에 사느냐고 직접 물으면, 그들은 편리함 때문이라고 답한다. 직장 가까이에 살고 싶고, 차가 없어도 지하철로 직장은 물론 필요한 어떤 곳에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무엇이든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유들은 많다. 이런 정도의 합리적인 이유들이면 쪼들리고 저축 한 푼 못하면서도 맨해튼에 살고 싶어지는가?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맨해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일 지도 모른다.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이 꼭 맨해튼 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는 맨해튼에 살아.” 그 한 마디를 위해 맨해튼에 사는 건지도 모른다.



맨해튼엔 싱글이 많다. 그리고 많은 뉴요커들이 공동으로 모여 산다. 뉴욕대 컬럼비아대학의 학생들은 아파트 하나를 빌려 침실만 따로 쓰고 주방과 거실 등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번듯한 아파트가 아니어도 맨해튼에 살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거다. 하지만 가족 연봉이 몇억에 달하는 중산층의 4~5인 가정도 맨해튼에서는 보통, 침실 한두 개짜리 아파트에 옹기종기 부대끼며 사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맨해튼에 산다는 건 분명 비싼 일이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에 대한 판단과 선택이 맨해튼의 집값과 월세를 끌어올리고,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대부분을 비워두는 아파트를 굳이 맨해튼에 사는 부자들이나, 다리 하나만 건너면 여유로운 저택을 소유할 수 있는데도 맨해튼에 사는 서민들이나, 어쩌면 일종의 허세 같은 말, “맨해튼에 살아”라는 한 마디를 놓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속화하는 맨해튼 탈출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 또는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들에 모여 사는 대단히 중앙집중화된 나라, 한국에서 “어디 사세요?” 하고 물으면, 그 서울과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살아요”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서울에 산다는 건 도무지 막연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신림동” “수원”, “분당”.... 그들은 좀 더 구체적인 지역을 말해준다. 그게 더 정확한 대답일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세요?”라고 물으면 “뉴욕에 살아요”라고 대답하지는 않는다. “맨해튼에 살아요”, “부르클린에 살아요” “롱아일랜드에 살아요” 등등. 하지만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도 많다. “트리베카(Tribeca)에 살아요”, “브루클린 하이츠(Brooklyn Heights)에 살아요”라고 말이다.



맨해튼에서도 가장 부촌 중 하나인 트리베카에 산다는 사람들은 맨해튼도 다 같은 맨해튼이 아니란 걸 말하고 싶은 걸 거다. 부르클린 하이츠에 산다는 사람들은, 자신은 부르클린의 후미진 지역들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부르클린의 부촌, 브루클린 하이츠에 산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처럼 맨해튼이 아닌 곳에도, 뉴요커들이 새롭게 선호하는 지역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르클린 하이츠


최근 뉴욕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굳이 맨해튼 안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 맨해튼은 섬이다, 공간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 한정된 공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으니 주거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건 당연한 일이다.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한때 바닥을 쳤던 맨해튼의 집값은 그 이후 쉴 새 없이 올랐다. 현재는 오히려 금융위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오른 상태다.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최근 2, 3년 동안엔 맨해튼의 월세 평균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거나, 맨해튼 고급 아파트 거래가 일시적으로 줄었다거나 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맨해튼의 집값은 계속 오르지만, 한쪽에선 맨해튼 탈출이 추세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최근 이른바 밀레니얼세대라고 불리는, 2, 30대의 뉴요커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새롭게 떠오른 게 부르클린이다. 맨해튼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고, 맨해튼에서 전철로 쉽게 이어지고, 게다가 거기서 살면, 정작 맨해튼 안에서는 볼 수 없다는 맨해튼의 환상적인 야경을 바라볼 수 있는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브루클린 하이츠 등은, 젊은 세대들에게 맨해튼에 비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월세를 내고도 맨해튼의 모든 것을 맨해튼에 사는 것처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지역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이 지역들에도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월세가 또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번 추세처럼 시작된, 맨해튼에 살지 않으면서도 맨해튼을 즐길 수 있는 지역에 대한 선호도는 아스토리아(Astoria)로, 롱아일랜드시티(Long Island City)로 즉 맨해튼을 둘러싼 다른 주변 지역으로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부르클린이 과거 흑인 동네로 인식되었듯 아스토리아나 롱아일랜드시티 역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맨해튼에 비해 가난한 동네로 인식되던 곳들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요즘 개발붐이 한창이다. 같이 살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이트 ‘roomi'는 젊은 뉴요커들이 월세를 나눠내며 같이 살 룸메이트를 가장 많이 구하는 지역이 지난해 부르클린 윌리엄스버그에서 올해 아스토리아로 바뀌었다는 보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아스토리아


“맨해튼에 살아요”. 사실 나도 가끔 그걸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저녁이면 차를 몰아 뉴저지로 돌아가는 대신 박물관으로 불쑥 들어가 저녁 내내 미술품을 감상하고 싶다. 언제가 좋을지 날짜를 선택하지 않고 저녁 무렵 마지막 세일로 나온 싼 티켓들을 사서 마음껏 공연도 보고 싶다. “저는 운전해야 돼요”하고 술을 사양하지 않고 밤새 마시고 취해 걸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맨해튼에 와 봤든 와 보지 않았든 누구든 듣기만 해도 막연히 흥분되는 이름 ‘맨해튼’. 거기 산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맨해튼은 점점 “모든 것을 갖고 있으나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 벅찬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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