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입력 2020.06.12 11:24
美 뉴욕 아시아계 실업수당 청구 두달 간 4883% 증가
작년 5000건→올해 25만건…흑인 보다 급속히 증가
영세사업장 폐쇄…‘인종차별·외국인 혐오’ 연루 가능성도
그동안 청구 워낙 적어… "정부지원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도"
미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트루먼 람은 지난 3월 170명의 직원을 해고 했다. 뉴욕주지사가 외출자제령을 내리기도 전이었다. 800명 가까이 수용 가능한 그의 식당은 코로나 여파로 3월부터 예약이 대부분 취소돼 하루 손님이 50명도 되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뉴욕 한인 드라이클리너 협회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회원 1500명 가운데 70%가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했거나 조만간 할 것으로 추산했다. 동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경우도 있었고 외출자제령이 떨어져 직원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않았거나, 매출이 급감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최근 두달 간 아시아계의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5000% 가까이 폭증했다. 모든 인종을 통틀어 독보적인 증가율이다. 소수인종이 코로나로 특히 큰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그동안 실업수당 청구 자체에 소극적이었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대형 위기를 계기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월 17일(현지시각) 코로나 여파로 한산한 미국 뉴욕 차이나타운 모습. / 로이터 연합뉴스
12일 미국 주(州) 가운데 유일하게 인종별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공개한 뉴욕주의 최근 발표 내용을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3월 말부터 6월 6일까지 25만1332건을 신청했다. 작년 같은 기간 5043건에 불과했는데 무려 4883% 증가한 것이다.
이는 전 인종의 증가율 144%은 물론 흑인 956%, 백인 122% 등 모든 인종을 웃돈다.
노동인구와 비교해서도 증가세는 눈에 띈다. 뉴욕 전체 노동인구에서 아시아계는 9%를 차지하는데 전체 실업수당 청구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이른다. 백인이 65%를 점유하지만 청구건수 비중은 51%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시아계의 청구건수 급증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추론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코로나 여파로 특히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인들의 실업이 급증한 건 미국 경제통계국(BLS) 자료에서도 확인 된다. 미국 내 아시아계 실업률은 작년 2~3%대로 백인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 4~5월 14%~15%로 급등했다.
5월에 백인 실업률이 떨어졌을 때도 흑인과 아시아인은 오히려 상승했다. 흑인이 16.7%에서 16.8%로 0.1%포인트 오르는 동안 아시아계는 14.5%에서 15.0%로 0.5%포인트 상승했다.
아시아인들 상당수가 소매업, 식당, 네일샵 등 봉쇄령의 영향으로 문을 닫은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다, 코로나로 인한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 뉴욕경찰의 증오범죄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코로나 확산 초반에 발생한 14건의 증오범죄의 피해자는 전부 아시아계였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의 방문객 수가 줄고, 종업원이 불특정 다수의 공격을 받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州) 정부가 외출 자제령을 내리기도 전에 가게 문을 닫는 사례가 많아졌다.
컬럼비아대 제니퍼 리 사회학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로 언급하면서 외국인 혐오증이 확산돼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공포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뉴욕대, 보스턴 매사추세츠대의 경제학자들은 자료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혐오가 아시아인의 실업수당 청구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아시아계 미국인이 문화적 이유로 다른 인종에 비해 실업수당 청구에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로부터 실업수당과 같은 지원을 신청해 받는 행위 자체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비영리단체인 아시아계 미국인 연합의 김아영 프로젝트 매니저는 "모든 아시아 문화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선 정부로부터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자부심과 관련한 이야기다"라며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겪은 인종 차별, 경제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공동체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