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입력 2020.11.20 06:00 | 수정 2020.11.20 06:41
1918년 스페인독감의 유행 시기별 사망자 규모. 9~12월 2차 유행 때 사망자 수가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스페인독감의 2차 유행 직전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단장 제공
올겨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유행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100년 전 스페인독감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1918년 1차 유행에 비해 가을·겨울철 재유행 시기에 대부분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스페인독감의 상황을 현재 코로나19가 따라가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독감은 1918년 봄에 첫 감염자가 나온 후 이듬해 초까지 1년여간 세차례 크게 유행했다. 이 기간에 약 5억명이 감염됐고 그중 최소 2000만명, 최대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매체들은 "1918년 9~12월 2차 유행 때 사망자 대부분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차 유행의 사망자 수는 1차 유행의 5배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신체 면역의 과잉반응으로 정상세포들이 공격받는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젊은층 사망률이 높아진 것도 2차 유행 때다.
1918년 10월 미국에서 스페인독감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CDC 홈페이지 캡처
19일 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단장은 "미국과 유럽은 이미 스페인독감 재유행 때와 비슷한 감염자·사망자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며 "올겨울에 단순한 3차 유행이 아니라 코로나19 발생 이래 최대피해 규모를 가져오는 재유행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묵 단장은 지난 12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헬스케이이노베이션 포럼 강연에서도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여기(스페인독감의 가을·겨울철 재유행 직전)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 속에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이날 "미국과 유럽은 이미 재유행이 시작됐고, 지난 봄·여름 1차 유행의 피해규모가 왜소해질 만큼 이번 피해가 훨씬 커졌다"며 "우리나라도 잘못하면 미국·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스페인독감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스페인독감처럼 마땅한 백신이 없는 가운데 춥고 건조한 날씨가 생존력과 치사율을 높이고, 사람들의 실내 활동은 많아지는 반면 환기 횟수는 줄어 전파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세계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한국시각 지난 18일 오전 9시 기준 60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8일 사상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선 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월드오미터 캡처
실제로 전세계 코로나19 확산세는 사상 최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 코로나19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월드오미터(worldometers)에 따르면 그리니치 표준시(GMT)로 18일 0시(한국시각 18일 오전 9시) 기준 전세계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61만여명이다.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선 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매일 50만∼60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지난 9월보다는 2배 이상, 5월보다는 6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같은 날 전세계 하루 사망자 수는 1만여명에 달했다. 지난 11일 처음 1만명을 넘은 후 두번째 기록이다. 전세계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정점을 찍었던 지난 4월 하루 사망자 수가 최대 8500여명이었던 걸 이미 상회했다. 확진자 수 증가에 따라 사망자 수도 계속 늘어나, 1차 유행의 5배 사망자를 냈던 스페인독감의 악몽을 재현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확진자 급증으로 현재 2000명 미만인 자국민 일일 사망자 수가 2∼3주 뒤 3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의료 전문가의 관측도 나왔다.
전세계 코로나19 하루 사망자 수가 한국시각 18일 오전 9시 기준 1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4월 하루 사망자 수가 크게 늘었을 때보다 높은 수치다./월드오미터 캡처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미국은 18일(현지시각) 하루에 17만 161명이 신규 확진됐다. 지난 4일 처음으로 하루 10만명을 넘어선 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사망자는 같은 날 기준 1848명으로, 하루 2000명을 넘었던 지난 4~5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적어도 다음달 초까지 일부 지역을 재봉쇄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영국은 일주일 전에 이미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5만명 이상의 누적 사망자를 냈다. 프랑스는 지난 17일(현지시각)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200만명 이상의 누적 확진자를 냈고, 이탈리아도 같은 날 7개월만에 다시 하루 사망자 수 700명을 넘겼다. 일본도 지난 18일 하루 확진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명을 넘었다.
우리나라는 19일 기준 하루 확진자 수 343명으로, 전날(313명)에 이어 이틀째 3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300명을 넘어선 건 2차 유행기간이었던 지난 8월 29일(323명) 이후 81일만이다. 정부는 이날 코로나19 감염재생산지수가 1.5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환자 1명이 전염 기간 내 1.5명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가 1을 넘은 경우를 감염병 유행으로 본다. 현 추세라면 한 달 뒤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회색 막대) 변화. 지난 2월과 8월 정점을 찍은 후 최근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질병관리청 제공
스페인독감 유행은 군인과 민간인의 이동 및 상호 접촉이 많았던 1차 세계대전과 시기가 겹쳐 감염자 격리, 거리두기 등을 시행·실천하는 게 불가능했고 전쟁으로 인해 의료물품 보급이 미흡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경각심도 낮았다. 1918년 9월 미국 필라델피아주는 사람들에게 재유행 조짐을 경고했지만 며칠 후 20만명 규모의 행사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때문에 스페인독감의 악몽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적인 방역 조치 시행과 사람들의 수칙 준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앞선 코로나19 유행 때 큰 피해를 입어놓고도 여전히 방역 조치가 미흡했다"며 "이제서야 재봉쇄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더 빨리 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오늘(19일)부로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올렸는데, 이미 2단계 격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방역 조치는 타이밍도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