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10 9:00 오전
미국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문) 어느 나라든지 개인이나 조직이 법규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이런 법규 위반행위에 내려지는 처벌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벌금이죠. 그런데 얼마 전에 미국에서는 한 회사에 대해 한국 돈으로 약 2조 8천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라는 조치가 내려졌죠?
(답) 네, 미국 연방법무부는 제약회사인 화이자사에 불법 판촉 혐의로 벌금 23억 달러를 부과했습니다. 이 액수는 미국 역사상 범법 행위에 부과된 벌금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라고 합니다.
(문) 미국 돈 23억 달러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국 돈으론 약 2조 8천억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화이자사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약회사인데 이 회사가 무슨 일로 이렇게 큰 벌금을 내게 됐나요?
(답) 네, 화이자사는 진통제인 벡스트라, 성기능 장애 치료제인 비아그라 그리고 우울증 치료제 졸로프트 등 13종의 약품을 불법 판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문) 불법 판촉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답)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벡스트라란 약은 원래 관절염 통증을 줄여주는 용도로 쓰이는 약인데요, 화이자사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을 설득해서 이 약을 다른 증상, 가령 혈압을 내리는 용도로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문) 그런데 관절염 치료약을 혈압강하제로 쓸 수가 있나요?
(답) 물론 약이란 것이 한가지 효능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유명한 약인 아스피린 같은 경우에도 이 약은 감기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를 막는데도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스피린 같은 경우는 많은 나라의 보건 당국에 의해서 다양한 효능이 입증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데, 이번에 화이자사가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 벡스트라라는 약에 다른 효능이 있다는 것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약이 원래 승인된 증상 외에 다른 증상 치료를 위해 처방됐다는 사실이죠.
(문) 화이자사는 물론 약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이겠죠? 어찌됐든 현 미국 법에서는 제약회사가 의사들에게 약을 지정된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처방하라고 설득하는 행위는 명백하게 불법인데요?
(답) 그렇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를 보면 화이자사는 약을 팔기 위해서 의사들을 비싼 휴양지에다 모셔다가 잘 접대했다고 하네요.
(문) 이런 제약회사들의 불법 판촉 행위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번에 화이자사의 불법 행위가 밝혀진 것은 의사들에게 약을 팔러 다니던 화이자사 소속의 한 판매원의 제보가 계기가 됐다죠?
(답) 네, 화이자사가 무려 2조 8천억원이나 되는 벌금을 내게 만들었던 주인공은 올해 45살로 텍사스 주에 거주하는 존 코프친스키 씨입니다. 코프친스키 씨는 지난 1992년부터 해고되던 2003년까지 의사들에게 화이자사의 약을 팔던 판매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코프친스키 씨에 따르면 화이자사는 판매원들에게 자신들이 파는 약의 부작용을 의사들에게 충분하게 알리지 말도록 지시했다고 하네요. 특히나 벡스트라 같은 약은 원래 허가 받은 증상 말고 다른 증상에도 처방하도록 의사들을 설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문) 물론, 이런 회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판매원들은 보상을 받았다고 하죠?
(답)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시를 따르지 않는 판매원들은 심한 질책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코프친스키 씨는 회사 측에, 불법 판촉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가 2003년에 해고당했다고 합니다.
(문) 그렇다면 코프친스키 씨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불법 행위를 관계 당국에 신고한 셈인데, 이런 사람들을 영어로는 ‘Whistle Blower’, 한국 말로는 내부 고발자라고 부르죠?
(답) 네, 이 ‘Whistle Blower’라는 말은 그대로 번역하면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한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조직의 비리나 범법 행위를 고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문) 미국에서는 이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또 이런 내부 고발행위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법들이 있죠?
(답) 그렇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몇가지 법들이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법으로는 ‘False Claims Act’, 한국 말로는 ‘부정주장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문) 이 법은 벌써 150년 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법인데요?
(답) 네, 150년 전이라면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던 시기죠? 그런데 이 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아주 재밌습니다. 당시 남북전쟁 기간 중에 미 합중국 정부와 남부 연합 정부는 민간 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이들로부터 많은 물자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민간 업자들이 정부에 납품을 하면서 장난을 많이 쳤던 모양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민간 업자들이 병든 당나귀나 말을 납품하던 경우도 있었고요, 또 고장난 소총을 정부에 팔아 먹는 업자들도 있었답니다. 그야말로 정부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죠.
(문) 그렇다면 이 법은 정부에 납품하는 업자들의 농간을 막기 위해서 생긴 법이로군요?
(답) 그렇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미합중국 의회가 ‘부정주장법’을 통과시키는데요, 이 법은 개인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불법 행위를 벌이는 사람이나 조직을 고발하는 것을 허용하고요, 소송 결과 주어지는 보상금의 일정액을 고발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그런 법입니다.
(문) 코프친스키 씨가 이 ‘False Claims Act’에 근거해 화이자사를 고발했다면 이는 화이자사의 불법 판촉행위가 정부에도 손실을 입혔다고 판단한 것이로군요?
(답) 그렇습니다. 화이자사의 이런 행위가, 정부가 운용하는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도 손실을 미쳤다는 그런 판단이죠.
(문) 그렇다면 이번에 회사를 고발한 코프친스키 씨는 법에 따라 화이자사가 내야 하는 벌금의 일정액을 보상금으로 받게 되나요?
(답) 물론입니다. 지난 6년간 잘 나가던 직장을 잃고 보험외판원으로 고생을 하던 코프친스키 씨, 보상금으로 무려 515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640억원을 받게 됐습니다. 직장을 잃고 고생 끝에 받은 돈치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액수죠?
(문)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고, 또 그 결과 보상까지 받는다는 것이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아예 법으로 이런 내용이 제도화돼 있는 것이 눈에 띄는군요. 문화의 차이가 법 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