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비판적 지성’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가 깊이 있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 책입니다. 우리 사회가 소득분배정책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의 저명 정치사회학자이자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의 2010년 출간작으로,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과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이 주제다.
저자는 2008년 위기를 1980년대 들어 본격화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의 필연적 귀결로 해석한다. 미국의 중산층을 이루는 근로자들이 글로벌 경쟁과 노동 대체 기술로 임금 정체를 겪는 가운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 재임)을 위시한 정치 리더들은 시장 중심적 경제정책을 추진하며 규제 완화, 부자 감세, 사회안전망 축소를 밀어붙이던 시대였다.
월스트리트로 통칭되는 금융산업이 정치권의 비호 속에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 이상으로 몸집을 불린 시간이기도 했다. 그 결과 미국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율은 70년대 말 9% 이하에서 2007년엔 23% 이상으로 급증했다. “소득이 이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됐던 마지막 시기가 (대공황 목전인)1928년이란 사실은 결코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저자가 ‘대불황’ 시기로 칭하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직전의 ‘대번영’ 시기(1947~1975년)와는 뚜렷이 대비된다.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재정 정책에 2차대전 특수라는 ‘행운’이 겹쳐 조성된 30년 장기호황 국면의 최대 수혜자는 중산층이었다. 노조 결성을 통해 근로자의 협상력이 강화되면서 주 40시간 근무, 최저임금제, 초과근무수당이 속속 자리잡고 고용보험ㆍ고령연금ㆍ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확충됐다.
반면 상류층 소득세율은 70~90%에 이르렀다. 덕분에 대번영기 막바지인 1970년대엔 총 국민소득 대비 상위 1% 비중이 10% 아래로 떨어질 만큼 분배 형평성이 강화됐고, 이렇게 형성된 중산층의 구매력은 장기 호황의 원동력이 됐다.
‘분배를 통한 중산층 강화’라는 대번영 시대의 사회적 기본 합의가 깨진 것이 파국의 단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계소득이 부족해지면서 이를 메우려 부부가 근로시간을 늘려 맞벌이에 나섰고 저축이 바닥 나자 빚을 늘렸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가격이 치솟은 주택은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정책과 맞물려 가계의 현금지급기 역할을 했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이자율을 낮춰 가계부채 거품을 키웠다.
저자는 대공황-대번영-대불황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미국 경제의 파국적 순환이 결국 대중적 좌절감과 분노를 자아내며 정치적 위기를 낳을 것으로 본다. 그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아닌 제3정당 후보가 당선될 거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이런 우려를 표명하는데, 당선자의 공약 상당수(미국 우선주의, 중국과의 무역 중단, 수입관세 인상, 불법이민 규제, 기업 해외이전 금지, WTO 탈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반동적 흐름을 막으려면 중산층을 지원해 총수요를 북돋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대안으로 △역소득세(우리나라의 근로장려세제) 정책 실시 △부자 한계세율 인상 △저소득층에 교육비 바우처 제공 △실업 대책보다 재고용 대책 강화 △정경유착 해소 등이 제시된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