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by 김지수

[이정재의 단필단상(短筆斷想)] 14.코로나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기자명 이로운넷=이정재 시니어 기자

입력 2020.04.23 04:30

수정 2020.06.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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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했다고 알려지던 그 날, 우리는 편집회의를 마치고 오랜만에 골목집에서 회식을 했다. '그 전염병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더라', '다른 나라의 얘기일 뿐이야', '얼마 전 아프리카 돼지 열병처럼 소란을 피우다가 말겠지', '전염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인데 성능이 뭐 그리 오래 가겠어', '걸리면 명의인 닥터왓슨이 치료해 주겠지' 등등 별 것 아닌 것 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것이 역대급 위력을 가진 전염병으로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벌써 넉 달이 넘게 지구촌을 온통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고 사람들을 돌덩이처럼 만들어 버렸다. 6대주 구석구석으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 지금까지 감염자는 무려 이백만 명을 훌쩍 넘었고 이미 사망자가 이십만 명을 육박한다. 인류의 60%이상이 감염되어 면역력을 가진 후에야 물러 날 것이라는 어느 나라 정치가의 예측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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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지식과 과학도 부질없음을 깨닫게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미생물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알았다. 해묵은 중동에서의 전쟁도 중단 시켰고 강대국 간의 무역 분쟁도 멈추게 했다. 정부가 해내지 못했던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었고 기업이 바랐던 세금 감면, 자금 지원, 이자율 인하, 원가 절감을 실현시켰다. 유류가격 인하도 미생물이 해냈다. 부활절 예배는 집에서 하게했고 모스크는 일찌감치 문을 닫았으며 일본의 신사참배도 말렸다. 대기오염이 줄었고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황금만능주의도 더 이상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으로 연대의 가치를 알게 했고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졌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놀라운 방역체계와 높은 시민의식에 세계가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수의 나라에서 우리의 방역체계를 벤치마킹하고 있고 국산 의료 장비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감염자의 발생도 뜸해졌고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사재기로 대형마트의 판매대가 텅 비었고 마스크도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유럽 사람들은 디스토피아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는데 말이다. 만약 한국이 투명한 정보공개와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한 채 이 전염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세계문명사가 새로 쓰여지게 될 것이다.


비대면 ‘언택트’문화의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전염병이 지나고 나면 IT산업에서 일부 시행하고 있는 재택근무가 일반화되어 가정의 사무실화가 실현되고 IT는 생활 속에 더 깊이 파고 들 것이다. 온라인 교육이 확대되고 원격진료와 처방이 이루어진다. 미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자 관련 기술을 보유한 전 세계의 기업들이 다투어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와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각종 규제에 막혀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은 도로아미 타불이 되고 실업자는 더 늘어난다. 이번 위기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슬기롭게 활용해야 한다.


집콕 중에 해묵은 먼지를 덮어 쓴 세계문학전집에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찾아 다시 읽었다. 전염병의 이름이 다를 뿐 전개되는 상황이 지금과 너무도 흡사하여 전율을 느낀다. 그때 그곳 사람들도 당국의 늑장대응을 비난하였고 끝내 도시를 봉쇄하고 격리와 같은 엄중한 조치를 취했다. 뜻있는 사람들은 연대하여 공중보건 봉사대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전염병의 발생이 우리가 저질은 죄악에 대한 신의 준엄한 응징이라며 회개하라는 빠늘루 신부의 다시 탄력이 붙은 설교도,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라는 날선 반론도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모순 투성이인 실존적 인간의 모습이다.


이 소설은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으며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쥐들을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몰아넣을 지도 모른다"고 끝맺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 설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까뮈는 말한다. 전염병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속죄도 교만도 아니요, 성실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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