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던진 경제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현지시간) 경고했다.
지난 3월의 충격이후 1천140만개의 일자리가 늘었고 이코노미스트들이 올해 3분기 연율 환산 23.3%의 성장률을 예상하는 등 회복의 징후가 강력하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형태는 급격한 회복을 의미하는 V자도, 충격이 한동안 지속한 뒤 회복하는 U자도 아닌 양극화를 나타내는 K자형이라고 저널은 진단했다.
언뜻 보기엔 강력한 회복을 나타내는 고용, 성장률 등 경제지표도 코로나 펜데믹 이후 사라진 2천220만개의 일자리, 연율 환산 31.4%에 달하는 2분기 성장률 하락폭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위기 이전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 하에 저널은 미국 경제가 K자 윗 부분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부유한 사람, 디지털 경제 또는 국내 필수재 공급과 연관된 사업, 기술이 발달한 서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대체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자격증이 부족한 저임금 노동자, 전통적인 사업, 여행과 대중들에 의존하는 지역은 K자의 아래 부분을 상징했는데 주식시장과 기록적인 가계자산 증가에도 푸드뱅크와 실업보험급여 신청을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유색인종, 여성, 저학력자에 가혹했던 펜데믹 실업
코로나19 이전에는 고교 중퇴, 장애, 흑인 또는 히스패닉 노동자를 포함한 취업시장에서 불이익을 받던 노동자들의 급여가 오르면서 실업률도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코로나19는 이들에게 특히 가혹했는데 올해 2월과 9월 미국 노동부의 고용률 자료를 비교해보면, 주로 식당, 소매업, 접객업에 종사했던 흑인과 히스패닉 여성들의 일자리는 각각 11.9%와 12.9% 줄었다. 백인 남성의 일자리는 5.4%만 줄어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작게 받았다.
학력별 격차도 심했다.
대학 학사 학위 이상 소유자의 일자리는 9월 들어 올해 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고고 졸업자의 일자리는 2월과 비교해 11.7%, 고교 중퇴자의 일자리는 18.3% 줄었다. 고교졸업자와 중퇴자의 일자리는 모두 합쳐 440만개가 사라졌다. 이들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밖에 되지 않지만 펜데믹 이후 실종된 일자리의 40%가 이들의 몫이었다.
고용주들의 고용속도도 6월 이후 둔화했다. 저널은 이런 추세라면 펜데믹 발발 2개월 동안 사라졌던 일자리를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에는 실업자의 90%가 6개월 내 일터로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9월에는 실업자의 절반 정도가 복귀를 예상하고 있다.
200개의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단체인 피딩 아메리카에 따르면 1천7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작년과 비교하면 50% 가까이 급등했다.
에버코어 ISI의 이코노미스트인 어니 테데스키에 따르면 8월까지 27% 이하의 사람들이 시간당 16달러 이하의 일자리에 고용됐다. 여기에는 호텔, 식당, 쇼핑몰 등이 있다.
반대로 K자의 윗단에 있는 노동자들은 펜데믹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간당 28달러 이상을 벌고 있다. 이들은 기술, 금융, 의료 등 화이트 컬러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부유한 미국인들은 펜데믹에 따른 금융손실도 모두 만회했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 따르면 상위 5분의 1에 해당하는 소득자들이 미국 자산의 71%를 소유하고 있다. 주택소유자들 또한 0%에 가까운 저금리로 인해 집값이 급등하는 등 K자 윗단의 경제회복을 누리고 있다. 전미 부동산 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기존 주택 판매가격의 중간값은 8월 들어 전년 동기대비 11.4% 올랐다.
◇바이러스가 바꿔 놓은 산업지형
코로나19 발발 초기에는 광범위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봉쇄조치로 미국 내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았다. 여러 회사의 지출을 추적하는 데이터 회사 코테라에 따르면 기업 대 기업(B2B) 지출은 작년에 비해 14% 하락했다.
일자리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회복 격차도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따라갔다. 대면활동을 요구하는 기업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됐고 원격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업들은 좀 더 안전했다.
카지노, 극장은 사업이 증발했다. 항공여행산업은 지출을 3분의 2까지, 식당은 절반까지, 주유소는 출퇴근 감소의 영향으로 4분의 1까지 줄였다. 제조업과 철도업은 석유, 가스 탐사업과 마찬가지로 급격하게 둔화했다.
시카고의 파머하우스 힐튼 호텔은 은행 압류에 직면했고 뉴욕의 고급레스토랑인 퍼세와 일레븐메디슨파크는 여전히 폐쇄 중이다. 엑손모빌은 올해 10억달러의 손실이 예상되고 백화점인 니만 마커스 그룹과 제이씨페니는 지난 5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변화한 지형에 일부 회사들은 재빠르게 적응했다. 방문객이 사라지자 치포텔 멕시칸 그릴은 2분기 온라인 주문이 전체 판매의 61%까지 세 배 증가했다. 치포텔은 새로 생긴 식당에 드라이브 스루인 '치포틀래인'을 포함하기 위해 직원을 추가 고용했다.
운동복 업체인 룰루레몬은 지난 봄 매장을 닫은 뒤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한 운동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고급 요가복을 판매한 룰루레몬은 '미러'사를 인수해 홈피트니스를 사업방향에 포함했다.
바이러스로 장비 수요가 늘어난 회사들도 있었다.
데이터 호스팅과 처리업체들의 지출은 4월 들어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수퍼마켓 사업도 가족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필수재를 쌓아두기 시작하면서 성황을 누렸다. 전자제품 소매업자들도 재택근무 증가와 야외 활동 감소에 따른 혜택을 봤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K자의 상단에 위치한 헬스케어, 금융, 정보통신업은 올해 말이면 2019년 수준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직물, 의류, 전기장치, 석유, 광산 석탄 산업은 2024년에나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내 제조업은 2022년 초반쯤 2019년 후반 수준으로 회복하고 내년 말에는 소매업과 운송업도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형 상장사의 3분기 이익이 2019년보다 22%가량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수석 미국 전문가인 그레고리 다코는 "위험은 사람들이 세 번째 스크린, 혹은 또 다른 책상을 사거나 바깥에서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아직 이번 침체의 모든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