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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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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Mar 02. 2022

마흔, 부모와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아직도 통화 중에 엄마가 들어오는 친구는 너뿐이다"


맞다. 난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산다. 대학시절 2여 년 정도의 짧은 자취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함께 산다. 독립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독립보다는 집에 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집과 직장은 가까운 편이었고, 야근이며 취미며 외부 활동이 많아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른 접어들면서는 경제적으로 자립도 했고, 부모님께 적지만 매월 생활비도 드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쏟아지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견뎌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만 잘 참고 넘기면, 적은 돈으로 공간을 셰어하면서도 살림은 안 해도 되는 효율적(?) 선택이었다. 


독립을 아예 생각 안 했던 아니다. 서른 초중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엄마와의 다툼이 잦아지면서 '이제 진짜 나가 살아야겠다' 생각했었다. 집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때마침 번아웃이 찾아와 독립보다는 여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1여 년의 여행이 끝난 뒤에는 독립보다는 동거인으로서의 경제적 협력을 선택했다. 


나이 꽉 찬 자녀가 부모와 같이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에게 있어 결혼 안 한 자녀는 여전히 보호해야 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는 나이, 경제적 자립, 사회적 지위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직도 10대 소녀이고, 20대의 철부지이며, 30대의 대책 없는 자녀일 뿐이다.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도 30년째 변함없다. 그러다 보니, 아주 빈번하게 현타가 온다. 10대 때 다퉜던 일로 지금도 다툰다고 생각해봐라. 푸념처럼 하는 '그때 너 말이야'를 몇십 년째 듣고 있으면, 그것 또한 고역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면,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냐?'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기혼자녀가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면, 경제적 협력이나, 손주를 돌봐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비혼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면, 아직 부모에게 얹혀 있는 철부지 자녀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사회적 시선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칠십 넘은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도 나름의 고초가 많다. 특히 요즘 같은 디지털 다양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가깝게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 어떤 A/S센터보다 빨라야 하며, 그 어떤 검색엔진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사소한 핸드폰 기능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일까지 나의 관여도가 점차 높아진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건 더 이상 적은 돈으로 공간으로 셰어하면서도 살림을 안 해도 되는 효율적 선택은 아니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모와 함께 사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3년 전, 우리 집이 26년 만에 이사를 했다. 오랜만에 이사로 우리 식구 모두가 설렜다. 나로서는 독립한 적도 없었으니, 초등학교 이후 첫 이사였다. 이사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씩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부모님께 의지를 했던 것 같다. 오래되긴 했어도 나보다 이사 경험이 있으시니까. 준비과정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절차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부모님은 나이가 너무 들었고, 이사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이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치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각자에게 26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부모-자식 간 관계의 시간은 26년 전 그대로였다. 나는 '내 나이가 곧 마흔이다. 더 이상 얘 취급하지 말라'라고 말은 하면서도 부모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우리 부모 세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부모님 역시 도와주려는 의지와 다르게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 당황해하셨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느꼈던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현재 나는, 내가 부모를 모시고 산다고 말하고, 우리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산다고 말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주어와 목적어가 달라졌을 뿐인데, 그 뉘앙스가 참 많이 다르다. 누가 모시고 살던, 데리고 살던,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거, 우리가 함께 사는 건 부모 자식관계를 넘어 동거인으로써 경제적으로나, 생활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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