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외국 사는 오빠네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면, 노년이 된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토록 소망했던 나그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느새 중년이 된 나는 가끔 나의 노년을 그려본다.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어떤 노후가 멋진 할머니일까?'
어렸을 때부터 65세까지 살고 싶단 말을 종종 했다. 60세까지 일하고 남은 5년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마음가는 대로 살다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열심히 일하고 찾아온 은퇴 후 일상이 아픈 노년이 될까 봐 막연히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에 은퇴해서, 내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나이까지만 살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오히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은퇴해서 조금 더 긴 여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졌다.
더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어.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만 살 수 있는 보너스 인생이야
유튜브에서 79세 일본 할머니의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은퇴 후, 살던 집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1년에 두 번 태국 1.5평 방에 머물며 여생을 즐긴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금 현재의 삶을 보너스 인생이라 말했다. 자녀로서 또는 부모로서, 더는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고,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감사하게 사는 삶, 그 자체였다. 새벽에 일어나 태극권을 하러 공원에 나가고, 함께 나온 동네 할머니들과 차 마시며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불안도, 욕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마지막 생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즐기는 평안뿐이었다. 영상 속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그렸던 노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얼마 전, 한 선배랑 은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라고 답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더는 즐길 수 없는 순간이 된 지 오래다. 루틴이 된 일상에 이벤트는 사라졌고, 형형색색 빛나던 일들은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노년이 돼야 아플 줄 알았는데, 마흔 갓 넘긴 나이에도 몸이 쑤시고 아프다.
단조롭고 지루해진 아픈 일상, 언제든 내려놓고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이유는 부모님 때문(or 덕분)이다. 따라서, 두 분 살아계신 순간까지 현재의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나의 의무인셈이다.
유튜브 영상 속 할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나에게도 지금의 의무가 끝나는 순간이 찾아올 거다. 그리고 그 이후 내게 주어진 삶을 나는 무언가에 얽매이지도, 욕심내지도 않으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막연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던 나의 노년의 삶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중년의 나는, 노년의 내가 물질적 빈곤함에 지치지 않도록, 체력의 한계로 벅차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