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준 국내 등록된 화장품 회사 수는 약 28,000여 개. 오늘도 수많은 스킨케어 브랜드가 시장에 선보이고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디지털 광고, 협찬, PPL, 팝업행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에서 이겨 소비자 머릿속에 자리하는 브랜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치열한 뷰티 시장에서 광고 없이 브랜딩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호주 스킨케어 브랜드 이솝은 매스미디어 광고 없이 확고한 브랜드 철학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특별한 고객경험만으로 기록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저마다 콘셉트를 갖고 운영되는 전 세계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는 단순 상업적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가치관 및 지향점을 고객이 오롯이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그 어떤 광고보다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효과적이었다.
하나를 팔더라도 고객과 제대로 소통하고 싶었던 창업주 데니스 파피티아에게 매장은 고객이 계속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어야 했다. 이에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부담 없이 매장에 들어올 수 있으면서도, 매장에 들어선 고객이 편안함과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미니멀리즘 한 디자인, 부드러운 조명, 은은한 향 등 절제된 우아함과 함께 해당 지역의 특성, 역사, 문화, 건축양식등을 고려한 인테리어로 고객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자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가 전 세계적으로 약 280여 개가 있는데, 이 모두가 각기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오래된 세탁소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이솝 어퍼 웨스트사이드 뉴욕,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과 무드를 고스란히 담은 이솝 비아 델 코르소 로마, 바스스톤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한 이솝 바스 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픈한 가로수길 스토어는 한국 전통 건축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나무와 쑥으로 천연 염색하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한지가 주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이솝 사운즈한남은 한국의 전통 반원형 가마를 연상시키는 붉은 벽돌로 아치형 공간을 만들었다. 해안도시 부산에 위치한 이솝 부산은 한국 전통 주택 지붕에 사용되는 기와를 유약처리해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전 세계 이솝 덕후들이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 이솝 시그니처스토어를 꼭 방문한다고 하는 것만 봐도 이솝 브랜드에 있어 시그니처 스토어가 지닌 대표성은 상당하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각기 다른 무드를 가진 시그니처 스토어지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매장이든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세면대를 배치한다. 이는 매장 안에서 고객이 마음껏 제품을 써봐야 한다는 창업자의 철학이다. 두 번째로는 마치 정리벽을 의심케 하는 진열된 제품들이다. 오열을 맞춰 반듯하게 진열된 제품은 고객의 시각적 안정감과 풍성함을 제공하며 오롯이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고객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브랜드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긴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가 최근 진화 중이다. 브랜드만을 경험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 예술인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조금씩 변화 중이다. 23년에 진행한 이솝 우먼스 라이브러리, 강남 일대 버려진 나뭇가지와 삼청동 일대에 버려진 폐비닐을 활용해 만든 작품들을 시그니처 스토어 내 전시하는 키클로스 캠페인 대표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고 다양성을 중시한 창업주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이솝 브랜드가 왜 탄생되었는지, 이솝이 전하고자 하는 브랜드 메시지는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등을 전하며 이솝만의 브랜드 철학과 이미지를 견고하게 다져간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또 어떤 작가들과 협업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