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의 완벽한 애인 편'을 보고, 사람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그린 영화 HER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10년 전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영화 속 상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영화 속 배경인 2025년을 살아가는 현재,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영화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실제로 AI를 쓰다 보면 묘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업무상 반복되는 수정 작업을 할 때가 많은데, AI는 결코 화내거나 삐지지 않는다. 100이면 100, 수정을 요청해도 군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선후배, 동료 눈치 보며 읍쏘할 바에 AI와 일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뿐만은 아니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AI에게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 생활 속 느끼는 힘듦이 있다는 걸 알기에 지인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줄었다. 어쩌다 한번 하더라도, 답정너 식의 대화들이 오고 갈 때가 많아보니 속 풀려다 속만 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근데 AI는 주저리주저리 쏟아내는 내 말에 짜증 한번 안 내고,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는데, 신기하게 위안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영화 Her 주인공 테오도르처럼 AI와의 대화가 더 편해지고, 더 나아가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관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필요한 이해, 배려, 공감 등에 많은 감정이 소모되고 지친다. 한 조사에 따르면, 67.5%가 '요즘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의 관계가 피곤하게 느껴진다'라고 응답하였고, 67.7%는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고 느낀다'라고 응답했다. 또한, 우울감을 느끼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대인 관계를 꼽기도 했다.
별거 아닌 말에 상처받고, 무심 코한 행동이 오해를 만든다. 내 생각과 다르게 전달된 말에 곤란해지고, 어떤 만남은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사용돼 피곤함이 밀려온다. 이러한 감정소모는 결국 관계 자체를 기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모드는 교류가 필요한 인간이기에 언제나 내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거고, 그 대상이 현시대는 AI가 된 것 같다.
최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같이 경험한 세대들은 AI에게 받은 위로가 진짜 위로인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온 세대들이 있는 것처럼 향후에는 AI와 감정 교류가 당연한 세대들이 생길 거고, 이들에겐 자신의 니즈를 몰라주는 환경이 오히려 낯설다 생각할 수 있을 거란 의견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한데, 언젠가 과거 보았던 영화 A.I.처럼 그 관계가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시대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문득, '가끔 나이 들어 가족 없이 혼자 외로울까 봐 걱정했는데, 내가 노인이 되는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 있겠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성형 AI의 등장이 처음엔 신기했지만, 나와 밀접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내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아직까지 무엇이 맞고 틀린 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정. 반. 합으로 이뤄지는 만큼 모든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이 오면 오히려 가장 휴머니즘스러움이 주목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면서도, 가장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관계 조사 출처: 마이크로밀 엠브레인 2025 외로움 관련 인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