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리'를 읽으며

일상에 더해주는 한 꼬집의 판타지

by Windy

*이 글은 ‘안녕 에리‘의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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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두 연인의 우연한 사랑 이야기부터, 수천 년 후 우주에서 벌어지는 전쟁까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스크린 속 세계는 허구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갈등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구는 때때로 우리 삶에 진실보다 더 깊게 스며들기도 한다.


네 영화, 완~전! 재밌있었어!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안녕 에리』는 이러한 영화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주인공 유타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그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담지 않는다. 실제 어머니는 자신의 유산을 위해 아들의 창작을 이용한 인물이였다. 이후 유타는 에리라는 소녀와 또 다른 영화를 찍지만, 이 역시 에리가 원하는 ‘기억되고 싶은 모습’을 반영한 허구가 나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허구이기에 거짓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유타의 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냉정했던 아내의 따뜻한 모습만이 영화에 담긴 것을 보고 놀란다. 에리의 친구는 영화 속의 에리를 통해 괴팍했던 그녀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게 된다. 영화 속의 그들은 현실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 허구를 통해 진심과 기억은 더 아름답게 남는다.


판타지가 한 꼬집 부족하지 않아?


이처럼 영화는 현실에 없는 것을 보여주는 힘을 가진다. 우연한 사랑,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 죽었던 연인의 기적 같은 귀환—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때때로 스크린 속 그 환상은 오히려 현실보다 더 깊은 위로를 건넨다.


그 허구 속에서 제시된 가능성이 단 0.000001%에 불과하더라도, 그 미세한 확률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경계가 되기도 한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래도 괜찮아. 나한테는 이 영화가 있으니까.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갈등하고 방황한다. 그런 순간마다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어 주었다. 유타의 아버지는 “창작이란, 보는 이와 듣는 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웃기거나 울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실 세계를 찍는 카메라는, 편집과 감정이 더해지는 순간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지극히 평범했던 나의 삶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로 다시 보이게 된다.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단순한 지적 허영심이나 누군가와의 대화를 위한 소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작은 세계가 담겨져 있고, 그 안에서 나는 낯선 감정과 마주하고, 익숙한 감정과 다시 조우하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영화는 어느새 내 인생에 깊이 스며들어 나의 사고와 감정을 변화시켜 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영화를 보며 또 하나의 판타지를 꿈꾼다. 가끔은 무료한 일상에, 폭발적인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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