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쌀밥에 어리굴젓

중3 아들 둔 엄마 이야기

by 나혜

나는 나쁜 엄마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나는 참 나빴다.


장장 3일간의 기말고사를 치른 아들에게 처음부터 화를 낸 건 아니었다.


1차. 영어 점수가 71점이라는 아들의 톡을 받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어 71점을 이해하는 쿨한 엄마다, 화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세뇌했다. 하지만 분노 +5)


2차. 시험 끝나서 신나게 놀고 온 아들의 전체 점수를 확인했다.

(그래... 이해하자. 그러나 분노 +10)


3차. 중간과 기말, 대략적인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해 보니 1,2점 차이로 등급이 바뀔 수 있는 과목이 3개 정도 있었다. 동시에 수학을 제외한 모든 시험지에서 3색 볼펜으로 그린, 매우 정성스러운 작품을 발견했다.

큰일 났다! 머리 꼭대기에 있는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이쯤 되면 세뇌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분노 +90. 그리고 폭발.)


이렇게 분노 수치 100을 넘긴 나는 아들을 소환했고, '너를 위해서야'라는 탈을 쓴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는 낮은 점수에는 화나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엄마가 늘 강조했던 검토도 하지 않았고, 중요한 시험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너의 자세에는 화가 나."


아들은 뜨거운 잔소리 폭격에, 삶은 콩나물처럼 생기를 잃고 방으로 들어갔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 또한 축 쳐졌다.


가만있자…

90점 이상 받았는데 시험지에 낙서가 있다,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화를 냈을까?

솔직히 아들 기준으로 못 받은 점수는 아니었다.

아들은 시험 준비에 노력했노라 자부했고, 실제로 지난 시험보다 평균이 올랐다.

내가 화난 진짜 이유를 곧 알아차렸다.

아들이 받아온 점수가 내 기대에 못 미쳐서라는 걸.

그런데 이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다.

왜?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큰 의미를 두는 엄마라 생각하니까.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피하고 싶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스레 부엌을 한 바퀴 돌면서 할 일을 찾았다.

갑자기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밥을 한 주걱 떴다. 냉장고에서 어리굴젓도 꺼냈다.

오버해서 화를 내고 생뚱맞게 밥 먹고 있자니 막내아들이 몇 년 전에 흥얼거렸던 노래가사가 생각났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분위기를 전환하려 아무거나 일단 해보자는 게 밥 먹기라니 실소가 나왔다.


뜨끈한 흰 밥에 어리굴젓을 얹어 한 입 먹었다.

어리굴젓 양념은 어제 보다 더 매워진 것 같았다.

짜고 매운 어리굴젓을 씹으니 혀 뒤쪽이 얼얼했고, 뜨거운 밥과 삼키자니 목구멍이 후끈했다.

시험 기간에 아들이 과학 공부를 하다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래요."

잔소리를 쏟아부어서 말 조심하라는 벌 받나?

그래, 낙서 가지고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는 없었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혀와 목구멍을 통해서 나온 가시 돋친 말에 아들이 상처받았다.

그리고 그 말을 뱉어낸 혀와 목구멍이 맵싸한 어리굴젓에게 호되게 혼났다.


청양고추가 빈 속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위가 찌릿하고 아팠다.

이건 또 뭘까... 청양고추가 나에게 '네 마음을 들여다봐'라고 말했다.

인정하기로 했다.

실망스러운 점수에 울컥한 게 맞고, 그래서 소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을 침소봉대해서 화낸 게 맞다고.


냉수 한 컵 들이켰다. 한 컵으로는 못난 감정을 가라앉히기 모자라서 한 컵 더 따라 마셨다.

달궈진 혀와 목과 위가 차가운 물에 정신 차리는 듯했다.

다시 식탁에 앉아 차가운 커피로 잔열을 식히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의 기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말자.

아들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인격적인 독립체로서 존중하자.

단순한 것 같지만 단순하지 않은 진리를 어리굴젓의 담금질로 마음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