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추억에(31)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던 순례의 기록

by 디본

31. 최종 100km의 카운트다운

:까미노 제30일 차(Sarria to Portomarin, 23.4 km; Oct. 20, 2017)


까미노 30일 차 여정부터는 순례길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다. 사리아(Sarria)를 기점으로 수많은 새로운 순례자들(Turigrinos)이 합류하여 길은 활기로 넘치고, '마지막 100km'라는 상징적인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1) 고독은 끝나고, 축제가 시작되다


10월 20일 금요일. 사리아를 떠나는 아침 공기는 여느 때와 달랐다. 그동안의 여정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었다면, 오늘부터는 '함께 걷는 축제'다. 사리아에서부터 시작해 100km를 걸어 완주 증서를 받으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길은 북적였다.


새 옷을 입고 가벼운 배낭을 멘 그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30일 차 순례자의 낡은 배낭 곁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그 소란스러움이 낯설었지만, 이내 나도 그 활기에 동화되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안개가 어우러진 갈리시아의 아침은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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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슴 뛰는 숫자, '100'


바르바델로(Barbadelo)를 지나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걷던 중, 드디어 모든 순례자가 고대하던 순간을 마주했다. 이끼 낀 돌담 옆에 서 있는 표지석(Mojón). 그곳에 선명하게 적힌 숫자.


"100 km" (순례자들의 낙서로 가득 찬 표지석)


이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두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프랑스 생장부터 피레네를 넘고 메세타를 건너온 지난 30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과, 이 여정이 곧 끝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표지석을 어루만지며 남은 100km를 후회 없이 걸으리라 다짐했다.


3) 갈리시아의 숲길 지나 포르토마린 입성


길은 전형적인 갈리시아의 시골 풍경 속으로 이어졌다. 페레이로스(Ferreiros)로 향하는 길은 돌담과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로 가득했다. 구수한 소똥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 투박한 자연의 냄새조차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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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만난 작은 마을들의 카페는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낯선 이들과 "Buen Camino!"를 외치며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여유. 사리아 이후의 길은 확실히 외롭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자, 시야가 확 트이며 거대한 강이 나타났다. 미뇨 강(Río Miño)이다. 그리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 건너편 언덕 위에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Portomarín)이 요새처럼 솟아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강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로 진입하기 위해 올라야 하는 수십 개의 가파른 돌계단.


"마지막까지 쉽게 내어주지 않는구나."


30일 동안 단련된 다리 근육과 살로몬 신발을 믿고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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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호가 매겨진 돌들의 비밀


포르토마린은 사연이 많은 도시다. 원래 마을은 저 강물 아래 수몰되었고(1960년대 댐 건설로 인해), 지금 걷고 있는 이 마을은 언덕 위로 통째로 옮겨진 것이다.


마을 광장 중앙에 서 있는 산 니콜라스 성당(Iglesia de San Nicolás)이 그 증거다. 마치 중세의 성채처럼 견고해 보이는 이 성당은 수몰되기 전,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돌마다 새겨진 숫자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수몰의 위기를 이겨내고 높은 곳에서 다시 태어난 성당처럼, 나 역시 숱한 위기를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산 니콜라스 성당(Iglesia de San Nicolás)


5) 30일 차의 밤: 뽈보(Polbo)의 유혹


갈리시아에 왔으니 이곳의 명물 '뽈보(Polbo á Feira, 문어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저녁 식탁엔 부드럽게 삶아 올리브유와 파프리카 가루를 뿌린 문어 요리와 화이트 와인이 올랐다.


사리아에서 합류한 새로운 인연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낡은 배낭의 동료들이 어우러져 포르토마린의 밤은 시끌벅적하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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