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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l 26. 2018

드라마속 IT회사들의 업무 이야기

실제를 보여주지 못하는 대중문화속 이미지


 요즘 종종 드라마에서 IT회사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온라인을 활용한 각종 서비스나 게임을 만드는 직종이 가장 트렌디하단 말이기도 하다.

 과거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이나 '논스톱'시리즈에서 가장 각광받는 학과는 '신문방송학과' (신방과)였고, 그 다음에는 의사, 변호사가 자주 보였던 것 같고 몇년전까지만 해도 드라마의 주무대는 정체불명의 기획실이나 마케팅팀이었다. 내용이나 업무가 어찌됐든 겉보기 화려한 오프라인 프로모션행사를 하다가 주로 악역에게 해코지 당하거나 우연히 나타난 남주의 도움으로 구해지기도 하다가 결국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온라인 비즈니스로 스토리가 많이 넘어왔다.


 지금 기억나는 대표적인 드라마는 총 3개.

운빨 로맨스(2016) : VR게임

이번 생은 처음이라(2017) : 데이팅앱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 RPG게임

 2000년대 초반 PC위주로 성장한 아이러브스쿨을 모티브로 커뮤니티로 대박났다는 <응답하라1997>의 서인국 형이야기는 너무 내용이 없어서 제외한다. 그럼 결국 셋 다 모바일 서비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대사를 듣다보면 이런 드라마들이 직업에 대해 오해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라인업에서 일하는 기획자가 보기에 얼토당토한 대사나 상황을 모아봤다.


운빨로맨스(2016)

잔망넘치는 겁나 천재 류준열님을 볼 수 있는 운빨로맨스

  이 드라마는 당시에도 본방사수했고 요즘 류준열 덕질 여행에서 정주행을 다시 하게 됐다. 이 세 드라마 중 가장 많은 업무량에 대한 지분을 가진 드라마다. 남녀주인공의 만남의 장소와 배경, 모든 위기가 대부분 게임개발을 매개체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류준열이 맡고 있는 제수호와 황정음이 맡은 심보늬의 직무를 보며 볼수록 전혀 감이 안온다.


 공식 캐릭터 설명부터 제수호는 PD(Project Director)에  CEO고 겁나 천재라고 되어있다. 사실 Producer도 아니고 프로젝트만 디렉팅한다는게 PM을 말하는 것인지 용어부터 혼동되지만 어쨌든 대표니까 그의 멀티 능력은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했다.
 물리학만 박사학위 준비를 했으나 갑자기 게임업에 종사하며  게임기획을 하고 직접 코딩 할 수 있고 심지어 랜섬웨어까지도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뭐 연결고리가 많지 않지만 현실에서 '겁나 천재'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류준열이 좋아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심보늬 정체는 정말 어렵다. 그녀의 기행과 업무를 살펴보자.


 1)입사시험 : 모두가 포기한 버그 해결 시험에서 유일하게 버그를 잡았다.

 -> 프로그래머인가?


 2)원대해 사장과 둘이서 IF라는 게임기획하여 베타 만들어 공모전에 출품

 -> 기획과 개발까지는 했다고 쳐도, 엑셀도 못 다루는 원대해 대표가 그래픽 작업이 됐을 리 없는데 설마 그래픽까지 싹 다 했다는 걸까?


 3) 제제팩토리 게임 인수 후에 팀에 소개 멘트: 'IF의 최초 기획자로 입사하게 된 심보늬씨입니다'

->기획자로 온건가???


4) 개리초이 스테이지의 시나리오는 심보늬가 해주세요.

 ->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인지 게임 아이템이나 기능에 대한 구현 기획자인지 혼동되기 시작한다.


5)협업 시에 대사 : '승현님(그래픽 디자이너), 제가 보낸 애니메이션 좀 봐주세요'

-> 애니메이션을 보낸다고?;;; 개발을 했다는 건가?아님 그림을 그렸단건가?


6)해외출장가는 수호에게 보늬톡을 설치해준다.

 : 둘만 쓸거라고 만들었다더니 앱스토어에서 설치하는 것부터 에러인데. 이 앱은 무려 메신저앱이다. 2주안에 베타를 만들어야하는 말도 안돼는 상황에서 이거 만들고 있었다니.


7) 퇴사한 제수호가 만든 랜섬웨어 백신이 배포됐을 때는 개발자를 밀치며 본인이 확인해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확인도 안된 백신을 소중한 게임이 묶여있는 사내 서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실행시킨다ㅋㅋㅋ)


 8) 퇴사후에는 노년층을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 특강을 하러 다닌다.


9) 1년간 혼자 게임기획을 해서 돌아온다. 그런데 시나리오와 타이틀만 나온다.(장르불명)

 

 게임 기획자인데 코딩을 엄청 잘하는 사람인건가?

 정체를 모르겠다 심보늬!


물론 작업 기간도 말이 안된다. 아무도 VR개발을 해본적 없는 상태에서 2주만에 뚝딱 베타가 개발됐다. 베타는 시나리오 1개만 모션캡쳐 기법으로 3d를 입힌 형태인데 선택지가 없이 단순 드라마타이즈라면 아주 일말의 가능성이 있긴 하겠지만, 누가봐도 무리스런 일정 아닐까?

 추가로 개발이 완료되고 출시전에 개발자와 디자이너 권혁수가 안마기에 누워서 하는 대사는 정말 이해가 안간다.

 '아우 지겨워 최종체크, 진짜최종체크. 진짜마지막최종체크 ....끔찍해!!!'

 테스트 기간에는 오류 확인밖에 없을 것이고 소스는 계속 버전형상관리가 되고 있을 텐데 저 최종체크는 어디서 나온걸까?? 마치 기획에서 기획문서가 계속 업데이트 되는 것을 모티브로 한 모양인데 어휘와 상황이 낯설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2017)

현실과 이상의 그 어딘가에 사는 저 부부

드라마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정주행만 2번한 드라마. tvN드라마답게 감정의 변화나 생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이 드라마에서 이민기가 연기하는 남주인공 남세희는 공식 프로필에서 '결말애'(결혼말고 연애)라고 하는 소개팅 어플의 '수석 디자이너'라고 소개된다.  업계의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일단 어플만드는 곳에서 '수석 디자이너'라는 어설픈 직함부터 낯설다. 디자인디렉터도 디자인팀장도 아닌 수석 디자이너라니. 의류사에나 있을 법한 명칭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는 개발자들뿐만 아니라 에이핑크 윤보미가 연기하는 '데이터분석가'도 등장했다.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드라마에도 등장하다니 많이 대중화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1) 남세희는 알고리즘대로만 움직인다는 특징을 드라마 전체에서 보여준다. 사고관도 그렇고 게임을 잘 하는 특징도 그렇다. 심지어 사교력자체가 부족하다. 그런데 디자이너다????

 => 디자이너는 UX의 직접적 영향이 있는 UI를 만든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찰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애도 안하는 사람에게 디자인을 맡기면 이건 죄다 망하는 거다.


2)리뉴얼 직전에 데이터 분석을 왜 함?

 => 남세희가 근무하는 회사는 데이팅앱 '결말애'의 2.0버전을 준비중이다. 2회에서는 막바지의 사무실 분위기가 나오는데 갑자기 데이터분석가인 윤보미가 그래프표를 들고와서는 행동분석결과를 말한다. 오픈 직후라면 직후의 결과 분석이라지만 오픈 직전에 무슨 소용인거지? 2.0버전 기획에 넣기에는 기간도 한참 전에 끝났을 것이니 무용지물이고, 특히나 남세희는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활용하지 않을 데이터의 분석결과는 하나도 멋지지 않다. 인력의 낭비일 뿐이다.


3) 남세희 직무의 정체가 뭐냐

 => 2화에서 남세희는 세입자 문제로 인해 칼퇴근을 선언한다. 마대표가 놀라자 그래서 업무를 쪼개났다며 모두에게 나눠준다. 디자이너의 작업이 진행되지도 않았다면 다른 작업은 거의 전면 중지다. 게다가 그 업무를 나눈다고? 그 회사의 인재들은 모두 멀티인가??
  2.0의 개발에 대한 체크를 마대표와 확인한 후에 앱을 배포하여 스토어에 반영한다.  그런데 이걸 디자이너인 남세희가 최종 반영 버튼을 누른다? 보통 앱 배포는 앱개발에 참여한 개발자나 형상관리 담당자의 역할일 텐데 대체 남세희의 직무는 무엇일까????


4) 2.0 버전이 고작 3주 걸렸다고?

=> 대망의 2.0버전 배포후 뒷풀이 자리가 벌어진다. 모두 힘들고 밤을 새우다시피 피폐해진 모습에서 마대표는 그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멘트가 이상 하다.

 '지난 3주간 정말 고생많았습니다!'

 뭐라고? 3주???

 3주는 애자일 방법론에서 고작1개의 스프린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심지어 앞에 남세희가 세입자 문제로 파업한만큼 일은 딜레이였을텐데 고작 이만큼 개발한 거 가지고 앱이 2.0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리적으로 엄청난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버전을 기록한다면 순식간에 128.0쯤 되어야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서준희가 게임사 동료들과 노는 모습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정해인이 맡은 배역인 서준희는 게임 아트 디렉터다. 드라마에서는 그림 좀 그리는 미대오빠를 만들기 위해 이 직업을 택한 것 같다. 물론 가능한 이야기긴하다.

 이 드라마는 사랑이야기가 주로 나오다보니 게임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않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끝까지 보질 않아서 기억나는 업무모습도 거의 없다.


 1) 아트 디렉터가 왜 자꾸 해외출장을 갈까?

 => 게임은 기획도 개발도 디자인도 손이 많이 가는 분야다. 그만큼 변수도 많고 손이 많이가기 때문에 협업의 강도도 쎄다고 알고 있다. 개발팀은 여기 있는데 자꾸 미국과 중국으로 출장을 강요당하는 건 직무가 과연 무엇이었던 걸까?

 공식 설명에서 서준희는 미국지사에 파견나가있다가 한국 본사로 돌아왔다고 되어있다. 본사가 국적이 다른 경우 지사는 거의 게임 퍼블리싱만 담당한다. 블리자드를 예로 들면 게임 한글화작업도 미국 본사에서 한다. 블리자드코리아는 이벤트운영과 영업을 그 밖에 홈페이지 관리정도를 한다. 만약 게임 아트디렉터 역할이라면 본사에서 일하고 있어야하는게 맞다. 대체 무엇을 디렉팅한단 뜻인지!




 국내의 드라마에서 나온 IT 기업의 업무형태를 기억나는대로 살펴봤다.


 왜 이렇게 진지충처럼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못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의 힘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과거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었을 때 초등학생들 꿈이 죄다 파티시에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드라마의 파급력은 크다. 그리고 드라마의 모습에서 환상을 찾는다면 현실과 다른 잘못된 직업관을 가지기쉽다.


 국내 드라마에서 IT기업의 업무가 소비되는 양상을 키워드로 요약하면 '#천재, #기계적, #자유로움, #트렌디'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렇게만 IT를 바라본다면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 만나는 개발자들은 갑자기 모르는 시스템을 보자마자 버그를 잡거나 키보드를 막 두드려서 해커를 막는 사람들이 아니다. 현실 속의 It는 3주면 뿅하고 탄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업무 안하겠다고 버티며 연애때문에 짜르라고 소리지르는 디자이너에게서 서비스적 고민이 깊이 있게 나오기도 어렵다. 

 나의 걱정은 아직 이 바닥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로만 이 직무 전체에 대한 곡해가 생길까하는 우려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럴까? 한마디로 아니다.
미드 중에 '실리콘밸리'나 '빅뱅이론'은 너드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코믹 장르지만 대체로 기반이 되는 내용은 실제에 가깝다. 우리나라처럼 직무조차 혼동되며 그저 멋져보이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점점 법조계나 의학계 드라마는 고증이 중요싱되고 있는데 어째서 이 IT업종의 일은 이렇게밖에 소비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아직 온라인 비즈니스란 것을 이해하는 것이 모두에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서비스란 그렇게 단 기간에 아이디어만 가지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소중함을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단짠단짠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열정적이어야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다. 그 어떤 스포츠영화나 성공스토리에 버금갈 정도로 서비스 기획의 과정은 격정적이고 다이나믹하다.
 이런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스마트한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중문화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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