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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Aug 11. 2024

내가 알아주면 됐지.

맏며느리, 엄마, 직장인, 작가라는 할 일 많은 삶은 행운이지


어제밤부터 오늘이 시작되었다.

매년 단 한번 있는 우리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있다. 장남인 남편이기에 9년전 처음 시작할 때도 불만이라기 보다는 누가 나한테 며느리로서 잘하고 사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존심 같은 느낌도 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자랑인 시절도  있으니까.

몇 해는 낑낑대며 요리를 직접 하기도 했지만, 여름 제사에 음식까지 하는 건 요리실력이 높지 않은 내 주제에 어림도 없는 일이고, 아기까지 키우는 지금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고 차라리 잘하는 집에서 제사 음식을 주문 했다. 날짜도 법도에 맞진 않겠지만 주말로 옮겨서 진행했다. 다들 직장인이라 퇴근후보다 이게 나으니까.. 모든 것이 다 도움을 주는 환경에서 사실 딱히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고는 아기로 인해서 어지럽혀진 집을 그래도 부끄럽지나 않게 정리하고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을 데우고 올리는 일. 그리고 손님들이 가고난 뒤에 빠르게 설거지와 마무리로 다음주의 우리 가족이 힘들어지지 않게 열심히 음식물과 쓰레기, 설거지한 제기를 복귀하는 것.


그런데 이제 아기가 있기에 손님들이 가고나서도 남은 저녁의 시간을 위해서 또 밖으로 놀러나갔다.

몇일전부터 집근처 쇼핑몰에서 열린 볼풀장을 보고 우어우어거리면서 볼풀장에서 놀겠다고 하더  우리 아들이었지만, 다들 재빠르게 예약한 탓에 줄도 서보지 못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가 그나마 사람이 적어서 무려 2시간반 뒤에 타임을 잡을 수 있었다.  거의 8시쯤이었지만 안할 이유야 없으니까.


기다리는 시간동안 열심히 아기 밥도 먹이고, 40분쯤 남았길래 우리 부부도 햄버거나 사먹자고 주문하고 나니.. 40분이라던 시간은 대기자로 판단된거라, 중간 사람들이 빠졌는데 갑자기 훅 줄어서 바로 우리 차례가 되어있었다. 40분이 아닌 것은 기뻤지만, 햄버거를 스킵해야 하고 4층에서 1층까지 얼른 시작전에 가야했다. 남편을 햄버거집에 두고 아기를 안고 4층에서 1층 행사장까지 부리나케 달려갔다. 숨을 헐떡이며 아기 신발을 벗기고 아기가 좋아하는 볼풀장에서 아직 혼자서 잘 못노는 아기를 위해서 또 30분간 열심히 놀아주었다.  놀아주는 사이에 남편이 왔고, 30분동안 두 손에 공을 꼭 쥐고 놀던 아가는 아쉽다며 징징댔지만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폭염의 더위를 느끼면서 집에 복귀했다.


남편이 아기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나는 빨래를 돌리고, 내일 어린이집 가방을 싸두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청소며 설거지, 아기 안고 달리기, 볼풀장, 남은 집정리까지..땀 범벅이 된 몸에서 소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문득 벗은 몸을 보는데, 어깨 여기저기에 실핏줄이 터져있다. 아뿔싸.. 아기를 안고 뛴 탓에 어깨가 다소 무리가 갔었나보다. 애 낳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가 됐다.


"나 진짜 오늘 열심히 살았는데, 이걸 누가 알아주려나?"


문득 그런 생각에 약간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물이라도 끼얹져야겠다는 생각에 찬물에 몸이라도 시원하게 식히고 나오니, 남편이 내가 먹지도 못했던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시원한 맥주 2캔을 준비해놓고 기다린다. 맥주 한 모금 꿀꺽꿀꺽 마셔본다. 최근 들어 가장 시원한 맥주.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누가 알아줄 필요가 뭐있나. 내가알고 있는데."


내가 음식까지 차리진 못해도 그래도 해야할 도리하는 거고, 시대착오적 관점의 도리라고 해도 그 덕에 1년에 한번 남편 형제끼리 한번 더 만나서 우리 아기랑도 얼굴 더 보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 많은 설거지 땀뻘뻘 흘리며 했지만, 덕분에 집도 정리 됐으니 주중에 오시는 친정엄마가 괜히 주방일 하게 나서지 않고 딸내미가 1인분 하고 사는거 보여드리는 게 효도 아닌가.

그리고 햄버거 못먹고 아기를 안고 1층에서 4층까지 달려다니면 어떠냐.  내 새끼가 볼풀장 좋아하는 거 내가 아니까 그냥 햄버거 먹는 거 한번 포기하고 아이에게 정상적으로 예약된 순서에 맞는 기회를 주는 것뿐인데. 어깨의 실핏줄? 출산 후 어딘가 부실해졌지만 육아 1년 후 근력은 솔직히 강해졌다. 11키로가 넘는 아들을 들고 뛰어다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혼자 사는 삶이 아니다. 차가운 맥주에 감자튀김 한 입을 나눠먹고 향기로운 물복숭아를 나눠먹을 가족이 있다. 그것만으로 나의 일요일은 가득 차있다.


어쩌면 나는 그저 더웠을 뿐이다.

미친 폭염 때문에 더워서, 잠시 무엇이 더 소중한지 잊었을 뿐이다.


아기가 잠들었다. 피곤했는지 금새 잠들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월요일을 준비하기 위한 직장인의 삶,  또 다음 책을 정리하기 위한 작가의 삶. 나의 삶은 아직도 남아있다.

애를 써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에어컨을 켜자. 덥지만 않아도 내가 나를 사랑할 여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찾을 수 있다.


오늘의 피로덕에 살아라도 빠진다면 뭐 그것도 럭키폴리잖아?

나 아직 애낳고 찐 살 좀 남았는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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