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짐 싸기와 열여섯 시간의 비행 끝에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짐 싸기는 험난했다. 배낭여행의 로망을 재현하겠다며 백팩을 고집부린 데다가, 필수 준비물로 안내받은 침낭과 등산화(방수작업화), 한국음식으로 소개하고픈 식재료까지 챙기고 나니 20kg이 훌쩍 넘었다. 호떡믹스, 김치전 믹스, 감자전 믹스, 불고기 양념, 잡채면... 각국 음식을 차려서 나눠먹는 '인터네셔널 데이'가 있다길래 꿀리고 싶지 않아서 무조건 많이 샀다. 되돌아보니 참 요령 없고 미련스러웠다. 워크캠프 일정 앞뒤로 개인 여행도 계획한 터라 즉석밥과 즉석국, 카레 같은 인스턴트도 집어 넣었다. 악명 높은 아이슬란드 물가가 두려워 외식은 최소화할 셈이었다. 과연 배낭을 멜 수나 있을까 싶어 업어보니 절로 꼬부랑 할머니 자세가 되었다. 내가 나를 업은 느낌이었지만, 무게의 주범이 식량이니 열심히 먹어치우면 차차 나아질 것 같았다. 뭐든 다 괜찮아 보였다.
2주 뒤 오월의 어느 날, 드디어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레이캬비크 공항에 내려 수하물을 찾고, 인파를 따라 몰려나오다 보니 어느덧 출구를 빠져나와 있었다. 경유지였던 프랑스에서 이미 한 차례 여권심사를 받았기에 별도의 입국 수속은 생략되었다. 유럽 국가 간 자유로운 국경 통행을 위해 체결된 솅겐조약 덕분이었는데, 참 편리하고 부러우면서도 조금은 어색했다. 숙제를 대충 해 간 날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안 하고 넘어간 것처럼 묘하게 밍숭밍숭하기도 하고, 마치 ‘아이슬란드는 당신이 누구든 가리지 않아요. 모두를 환영해요’라는 듯 호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항버스에서 내다본 아이슬란드의 첫인상은, 그냥 딱 '흐린 날의 제주'였다. 허허벌판엔 울퉁불퉁 까만 현무암이 대지를 뒤덮고, 돌담 사이로 푸른 이끼가 그득 붙어 있었다. 검은색, 회색, 고동색, 그리고 가끔씩 초록색인 세상. 추적추적 비가 내려선지 적막하고 쓸쓸했다. 꼭 세상의 끝인 것 마냥 휑뎅그렁했다. 프랑스에서 조바심 나는 공항 환승(샤를드골->오를리)까지 해가며 16시간을 넘게 날아왔는데, 어딘지 익숙하고 우울한 무채색의 풍경 앞에 적잖이 실망했다. 뭐야... 여기도 별것 없잖아.
긴 황량함이 슬슬 지루해질 때쯤, 저 멀리 집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크게 커브를 돌자 갑자기 세상의 빛깔이 달라졌다. 살짝 갠 하늘 아래, 하늘색, 분홍색, 노란색의 수채화 같은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흩어져 있었다. "제주도 같다"라고 내뱉은 말을 얼른 회수해야 했다. 호숫가를 둘러싼 파스텔톤 마을은 동화 속 그림처럼 평화롭고 고요했다.
버스는 시내 중심가 교차로에 나를 내려두고 떠났다. 앞뒤좌우 사방이 온통 낯설었다. 등 뒤에 실린 배낭의 무게가 타향에 갓 도착한 이방인의 신세처럼 막막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다른 백패커가 내 숙소가 어딘지 물었다. 우연하게도 그와 같은 곳이었다. 왠지 마음이 놓였다. 길동무가 생기니 갑자기 든든해졌다. 그는 IT업계에 종사하는데,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아이슬란드로 출장 왔단다. 배낭 메고 출장이라니 신선하기도 하고, 콘퍼런스 장소가 아이슬란드라니 부럽기도 했다. 우린 잠시 헤맨 끝에 결국 호스텔에 도착했다. 쾌활한 스텝들이 친절하게 우릴 맞아줬다. 서로의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며,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향했다.
인건비가 비싼 곳이라선지 청결함을 어필하기 위함인지, 도미토리 침대의 침구류 관리는 셀프였다. 입실하면 직접 매트리스, 이불, 베개 위에 각각 커버를 씌워야 하고, 퇴실할 때는 도로 다 벗겨 세탁함에 넣어야 한다. 긴 비행과 뒤죽박죽 된 시차,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급격한 피로를 몰고 왔다. 남은 힘을 쥐어짜 겨우 침대를 정돈하고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꿈에도 몰랐다. 그토록 고대했던 아이슬란드에서의 첫날이 이다지도 허무하고 갑작스럽게 종료될 줄은... 나는 저녁밥도 잊어버린 채, 동면에 빠져드는 곰 마냥 긴 잠 속을 헤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