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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Nov 27. 2018

프라하, 천문시계탑과 모차르트

이름은 웅장한 시계쇼와 람부르스코

나는 그 마을의 이름이 좋았던 거예요. 캉이라 불리는 곳에서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했던 거라구요. 그곳으로 나를 이끈 건 욕망이 아니라 호기심이었어요.
– 파스칼 키냐르(로마의 테라스) 


독일 트리어에서 기차와 버스를 3번 갈아타고, 9시간에 걸쳐 힘들게 프라하로 간 것은 그곳의 이름이 좋았기 때문이다. 프라하라고 불리는 곳에서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했기에. 유럽 심장부의 보석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체코, 프라하. 필스너 맥주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체코에서 만난 와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피소드 1. 천문 시계탑과 카페 모차르트, 그리고 레드 와인


바람이 꽤나 불던 아침. 여기는 프라하. 지금은 천문시계탑 앞 오래된 카페. 프라하 성당의 오래된 벽과 도시의 붉은 지붕은 보기 좋게 대비된다.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시장의 과일들


프라하의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될 정도로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 중에서도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사는 최고의 관광 명소이다. 1338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구시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부 훼손되기도 했지만, 시계만은 600년 넘게 프라하의 역사와 함께 잘 보존되어 왔다. 천문시계엔 달력과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개의 큰 원과, 열 두 별자리와 북극성의 위치 등 매우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구시가지의 천문 시계


시계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우연히 발견한 진주 같은 카페. 이름은 ‘카페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프라하 사랑은 그의 교향곡 38번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제 : ‘프라하’. 그의 오페라들은 프라하에서 대대적인 히트를 쳤고, 모차르트는 기어이 프라하를 방문하여 불후의 걸작 ‘돈 조반니’를 상연했다.  

카페 모차르트 : https://www.cafemozart.cz/?lang=en

귀로는 교향곡 38번의 음율을 소화하며, 입술엔 와인을 축인다. ‘Zweigeltrebe(츠바이겔트레베)’라는 이름의 생소한 체코 와인. 짙은 루비색에 엄청나게 풍부한 검붉은 과일의 아로마. 진하고 두꺼운 탄닌의 거칠함. 따스함 이상의 뜨거움이 느껴지는 와인 덕에 회색의 스산한 가을 공기가 한껏 데워진다.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흘러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마치 디오니소스처럼 나를 나른하게 한다.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 홀로 조용히 시계쇼를 기다린다.  

와인잔을 통해서 보는 천문 시계쇼


‘천문시계쇼’는 매시 정각마다 열리는데, 정각이 가까워지면 어마어마한 인파가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모두가 같은 곳에 시선을 둔다. 시계에서 나온 조각상들의 몸짓은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기도 해서 목발을 쥐어 주고 싶은 정도이다. 솔직히 말하면, 명성에 비해 시계쇼가 너무 시시해서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어? 벌써 끝이야?” 하는 짧은 탄식이 여기 저기서 터져나온다.) 약 30초간의 짧디 짧은 쇼가 끝나면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버린다. 600년 전이야 이렇게 움직이는 인형들이 사뭇 신기하기도 했겠지만, 현대인에겐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보다 재미 없게 느껴지는 것. 하지만 600년간 그래왔듯 어제도 오늘도 시계쇼는 하루에 24번 펼쳐지고, 엄청난 수의 여행자가 시계탑 앞에 선다. 미각으로 문화를 탐하며, 시계쇼를 와인잔으로 투영해본다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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