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 유학 생활 #1
20살에 친구와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처음 와인과 마주했다. 저무는 노을 속 잔디밭에 누워,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시던 순간, 세상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삶의 여유를 선물하는 매개체였다.
그저 와인이 좋아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6년이 흘렀다. 대학생 때는 수업을 마친 후 피곤한지도 모른채 새벽까지 소믈리에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막걸리 양조장 인턴으로 들어가, 나만의 술을 출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갓 대학을 졸업한 햇병아리가 와인 양조학 석사를 준비하기 위해 프랑스에 도착했다. 참고로 불어불문, 화학을 전공했다. (괴짜)
내가 도착한 곳은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다. 지중해와 맞닿은 곳으로 프랑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이다. 프랑스의 최대 교육 도시로 1/3의 인구가 대학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특히, 대학교 근처에 가면 젊은 학생들(나 포함)이 즐비하다.
많고 많은 지역 중에 몽펠리에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Institut agro Montpellier라는 그랑제꼴 석사 진학을 희망하기에 몽펠리에에서 어학연수를 한다면 조금이나마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준비하고 있는 석사 과정은 'Science de la vigne et du vin', 와인 양조학이며, 국가 공인 양조사를 선출하는 DNO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첫 번째 스텝이다.
아무튼, 네이버 와인 블로거였던 내가 브런치 스토리로 넘어와서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이다. 스스로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에 오기 전 나의 여러 멘토 중 한 명인 의사 선생님(지인)께서 주었던 조언이 떠올랐다. "너의 험난한 여정에 있어서 연료가 될 장작을 너 스스로가 마련해보는건 어떻겠니" 동시에 유튜브를 추천해주셨는데 아직까지는 글 쓰는게 좋아서 잠시나마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대치동에 신흥정육식당이라는 찐맛집을 알게 된 그 날.. 고기를 얻어먹은 것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걸 받은 날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의 장작은 타인이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항상 곁에 맴돌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대학교 선배도 있었고 앞서 언급한 일하면서 만난 의사 선생님도 있었으며, 우리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철저히 혼자가 된 이 상황에서 어쩌면 무기력한 나에게 장작이 되어줄 수 있는건 나 자신이라는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유학에 필요한 행정 과정, 꿀팁 등을 기대하고 들어왔다면 미안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 이곳은 단지 혼잣말과 푸념 그리고 한탄, 잡다한 생각들이 난무할터이니. 지금이라도 그럴싸한 정보를 얻고자 왔다면 뒤로가기를 추천한다. 실용적인 글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가 부제라면 부제일 것이다.
그래도 실수로라도 들어온 분들을 위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 아름다운 것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셀카를 잘 안 찍나보다). 그리고 관심사가 넓어서 문학, 과학, 사진, 와인, 언어, 노래, 이 중에 하나라도 겹친다면 미약하게나마 '이런 것도 있네?' 하는 정보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효율의 끝이겠지만.
끝으로 최근에 쓴 시를 스윽 내보이고 물러나겠다.
푸른 말의 공회전
화살표의 끝에는 지구를 족쇄 삼은 푸른 말이 있다
사슬이 정의한 원형 궤도를 그리며, 밤마다 어슬렁이는 말
낯선 혹성 아래 경외심로 굳은 각목들의 찬송가가 어둠을 애무한다
멍에를 짊어진 자들이 방향을 잃을 때면,
파도가 제 아들 삼키듯 스스로를 소화시키는 것이다
기울어진 초원에서 수평을 맺는 유일한 법은 회전 뿐이라는 것을
우리의 말로는 알고 있다
스스로의 고삐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찰 없는 세상 속의 발광법
그래서 나는 바다의 소음으로 도금한 무게추를 너에게 선물한다
가리어진 비상구 속 네온사인을 자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