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 유학 생활 #5
벌써 2025년이 끝났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게 이제야 점차 실감나기 시작한다. 올해를 돌이켜 봤을 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해였던 것 같다. 나태했던 해였고 그것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던 한 해였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12월 끝에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한 결 명쾌해졌다. 항상 그랬지만 나는 인생을 나아가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긴 하지만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면서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았다.
현재는 앞으로 가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중. 결국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나였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12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곱씹으면서 이제 후회와 반성은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려고 한다.
12월은 마지막 최종 평가와 연속되는 중간 평가들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바쁘게 지나갔다. 특히, DELF에서는 문법을 마스터하고 DALF로 넘어가기 때문에 문법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였다. 감사하게도 몽펠리에 IEFE에는 Belle Johanne이라는 명교수님이 계시기에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문법은 한국인들이 잘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에서 공부한 이후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한국 문법을 공부할 때는 이론만 이해하고 문제 풀이에 애를 썼는데, 이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느낌.
같은 반 중국인 친구들이 같이 영화 보자고 해서 주토피아2를 보고 왔다. 프랑스어 더빙이었으면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나왔을 텐데 영어라서 안도했다. 시리즈 영화는 역시 1편이 가장 재밌는 것 같다. 주토피아 컨셉의 신선함이 사라지니까 클리셰 가득한 애니메이션처럼 느껴졌다.
이 날을 제외하고는 최종 시험 전까지 항상 카페에 있었다. 전에도 소개했던 De la Sierra Coffee Roasters에 매일 출석했다. 이제는 내 얼굴만 보이면 샷을 내리고 있는 직원들. 가벼운 대화와 함께 따로 주문없이 결제만 한다. 뭔가 이젠 이들의 루틴 속 한 명이 되어버렸다.
생각보다 프랑스에도 카공, 카페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카페들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잘 찾아야 한다. 이 곳은 2층이 비공식적으로 오피스 존으로 활용되고 있기에 눈치 안 보고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것도 한 몫한다.
그렇게 최종 시험 날이 왔다. 시험은 이틀에 나누어서 보며, DELF 시험과 마찬가지로 하루는 말하기 하루는 듣기, 읽기 시험을 본다. 추가적으로 이 곳에서는 문법을 또 따로 봤다. 시험 시간은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였던 것 같다. 난이도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듣기는 헬이었다.
언제쯤 듣기를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난감하다. 그 외 작문과 말하기는 잘 본 것 같고 문법은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슥슥 쓰고 나오느라 아마 꽤 틀렸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적어도 중간 시험들이 더 어려웠기에 통과는 했을 것이라 예상.
시험도 끝난 기념으로 카페-집-학교 무한루틴이었던 내가 바깥 구경 좀 하려고 노력했다. 사진처럼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프랑스답게 12월 초부터 곳곳마다 장식을 해놓았다. 특히 북유럽 친구들은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노르웨이 친구들은 올라간 상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자진 입대를 할 정도로 크게 의의를 두지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인이니까..
그럼에도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분위기 좀 낼 겸 약속들을 잡았다.
처음으로 내돈내산 외식도 하고 사치도 부렸다. 환율이 현재 1700원이라 손을 덜덜 떨면서 카드를 낸 기억이..돈 좀 아껴야 하는데 커피만큼은 못 끊어서 다리도 덜덜 떨면서 가계부를 매일 적는다.
저녁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는데 수도교에 쏘는 조명들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서 다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날씨가 쌀쌀하긴 했는데 방쇼 Vin chaud로 몸을 녹이니 버틸만은 했다. 이 날은 미국인, 베트남인 친구와 하루종일 떠들었던 것 같다.
그 다음주에는 중국인 친구들 집으로 초대해서 제육볶음과 진짜 짜파게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얘네도 참 착한게 두 손 가득 과자, 음료수 바리바리 싸온다. 아시아인들끼리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게 이상하면서도 웃기긴 했는데 아무튼 즐거웠던 시간.
종강을 하고 바로 몽펠리에에서 주짓수를 시작했다. 주짓수 하는 사람이 집에 오면 항상 멍이 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몸 쓰는 건 나름 자신 있어서 시작했는데 유럽인들 몸이 여간 단단해야지 원 유연한 바위(?)랑 싸우는 것 같다 ㅋ
처음으로 서브미션으로 탭 받아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었는데, 알고보니 15살이었던 것에 대하여 정말로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직까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 친구도 내가 그나마 만만한지 어제도 나를 찾아왔다. 젠장.
마지막으로 몽펠리에가 가장 아름답게 나온 사진 한 장
참 이상하게도 12월이 되면 한 번씩 나에게 고난이 찾아오곤 한다. 19살 크리스마스 이브 때 입대를 한 이후로 매 해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다는 것에 대한 예민함이랄까. 돌이켜보면 이 때문에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아픔만큼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새롭게 시작된 2026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