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보다 3살이나 연하인 그는 집요하게도 나를 쫓아다녔다.
오빠의 하얀색 아반떼를 빌려 타고 다시 없을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나에게 꼬맹이 같은 그는
짐짓 어른인 채를 하며 열렬한 구애를 펼쳤다.
도시락을 싸주거나 스터디 모임에 꽃다발을 보내는 등의 일에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나도 바보였고 그런 나를 얻어보겠다고 매달리는 그도 바보 같았다.
열정의 끝은 안 봐도 보이는 듯했고 나도, 그도 언젠가는 식고야 말 것이라는 비관론에 뉘엿한 석양을 바라보며 처연함을 자처하곤 했다.
그런 그를 무던히도 밀어내었지만 100일을 바래다주던 우직함에 이끌렸고 취준생이던 나를 끝까지 챙겨주던 무모함에 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101일이 되는 날부터 바래다주지 않아서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할 마음을 언제나 조금씩 남겨두었고 그는 늘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해 밀어붙였다.
그가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공허해졌을 무렵 나는 계주의 마지막 주자가 되어 바통을 넘겨받고 말았다.
이제는 나만 결승점을 향해 혼자 달려야 했다.
결코 길지 않은 트랙이었지만 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넘긴 바통은 거머쥐기에는 너무 컸고 무언지 모를 눈물을 항상 뿜어내게 하는 물건이었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야 겨우 알아낸 일이지만 나에게 바통을 넘긴 그는 이미 레인을 떠나 있었고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 둔 상태였다.
나만 혼자 외롭게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어떠한 메달도 따낼 수 없었다.
무릎도 꿇어보고 나체로 덤벼들어 아이를 갖자고도 애원해보았다.
우선은 같이 살 집을 구해보는 건 어떨까?
결혼식은 안 올려도 좋으니 우선 작게 시작해보자.
숱한 꼬임에도 그는 미지근한 반응으로 먼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쿨하지 못했고 벌을 받았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게 고작 그의 육체적 외도를 목격하고 말리라는 계시인걸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 사무실의 애꿎은 컴퓨터 본체를 발로 한대 걷어차고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에 들썩이는 어깨가 무슨 박자인지 모르겠지만 경쾌했고 나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정해진 순간을 향해 나는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가.
조퇴를 하고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이 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