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의 중세, 그리고 와인

기독교 중심의 사회에서 와인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by 와인파는총각

얼마 전,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 시절 예루살렘 왕국을 두고 치열한 대립을 펼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이슬람 최고의 지도자이자 중동의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살라흐 앗 딘 (일명 살라딘), 자애롭고 그 누구보다 용맹하였으나 한센병으로 인해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보두앵 4세, 그리고 전쟁과 신앙 사이에서 진정한 기사도 정신으로 예루살렘 침공에서 사람들을 지켜낸 주인공 발리앙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이 만난 매우 매력적인 영화이다.


보두앵4세.jpg 영화에서 묘사한 보두앵 4세. 인자하며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현실 고증이 정말 잘 된 인물이다.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고 게르만 족의 오도아케르가 로마를 점령하면서 찬란했던 제국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유럽에는 혼돈기가 찾아온다. 로마라는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 설립된 게르만 왕국들, 그리고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교회의 영향력이 크게 상승하게 되며, 종교라는 질서가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교황 및 주교, 수도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해지면서 경제, 문화, 정치를 변화시키게 된다.


당시, 포도를 키울 수 있는 영토를 봉헌받은 여러 수도원들은, 미사용 와인을 직접 양조한다. 중세 초창기에는 아직 질 좋은 보관 용기 (도자기, 오크통, 금속, 유리 등)을 구하기 힘들었으며, 주로 암포라 (고대 그리스 식 토기)를 활용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산화와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없었기에, 와인 자체는 빨리 소비하는 형태로 양조가 되었다. 하지만, 수도원은 본인들의 성체 미사에 사용해야 하는 와인이 오랜 기간 필요했고, 이는 직접 보관 기술을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된다. 지하 셀러를 통해 일정한 온도, 습도를 유지하기 시작하며, 오크통의 보관을 정착시키게 된다. 또한 와인병을 밀랍, 송진 등으로 막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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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권으로 대표되는 종교의 영향력은 의도치 않게 정점을 찍게 되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속화가 되며 탐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 정점을 찍게 되는 사건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예수의 탄생지이자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마수에서 되찾기 위한 이 원정은 7차에 걸쳐 이뤄졌고, 여러 원정을 통해 예루살렘 왕국을 건립하기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교황권은 점점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아비뇽 유수와 사코 디 로마를 겪으며 그 위상을 잃기 시작한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를 매개로 한 2개의 큰 세력의 충돌이 아닌, 유럽의 문화를 뒤흔든 큰 사건이였다. 이는 와인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세의 와인 산업은 교회와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딕트회, 시토회 등의 수도원들은 포도밭을 직접 소유하면서 와인 양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십자군 전쟁을 통해 키프로스,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다양한 와인 제조 기술과 포도 품종들의 교류가 이뤄졌다. 원정대로 인해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와인의 보관 기술 역시 매우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유황초를 활용한 오크통 살균 방식 (오늘날의 이산화황의 원형이기도 하다.) 등이 개발되면서 획기적인 와인 운송이 가능해지며, 장기 숙성형 와인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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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이후, 서유럽에는 악마가 등장한다. 무려 유럽 인구의 대 다수를 쓸어버린 흑사병의 창궐이다.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도시 상인계급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오게 되며, 교회의 세속화가 급격히 이뤄지게 된다. 와인 산업 역시도 수도원 중심에서 도시 상인 중심으로 변화가 이뤄지며, 다양한 변화를 거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와인에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귀족들을 위한 유리병이 개발되었다. 이 두 기술의 개발은 장기 숙성 와인의 기틀이 되었으며, 보르도와 부르고뉴로 대표되는 장기 숙성형 레드 와인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교황권의 추락에 가장 직격탄이 된 아비뇽 유수는 와인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프랑스의 국왕 필립 4세는 본인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은 교황 클레멘스 5세를 납치하여 프랑스 론 계곡에 위치한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겨버린다. 이로 인해 교황청은 로마와 아비뇽으로 갈려버리게 되고, 각자 교황을 선출하는 정말 웃음만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무려 70년동안 이어지게 되며, 니케아 공의회 이후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아비뇽 교황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을 일컬어 아비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아비뇨네지 (Avignonesi)’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이 이름으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비뇨네지 와이너리 전경.jpg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아비뇨네지 와이너리 전경, 가운데 위치한 거대 해시계가 매우 인상적이다.


아비뇽의 교황청은 정말 막대한 양의 와인을 소비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막대한 소비로 인해 주변 지역의 와인 산업은 큰 발전을 이뤘으며, 현재의 론 지역 와인의 기틀이 된다. 14세기 연대기 작가 중 하나인 프루아사르의 기록에는 “아비뇽에는 포도나무가 신의 말씀보다 더 빨리 퍼졌다.” 라는 기록이 있다. 70년의 유배 (?) 중 프랑스인 교황이였던 요한 22세는 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비뇽 북쪽에 별장을 건설하고 그 주변을 포도밭으로 가꾼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생산된 와인을 ‘교황의 와인 (Vin du Pape)’라고 불렀으며, 그 별장을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 (Chateauneuf du Pape) 불렀다. 바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샤토네프 뒤 빠쁘의 유래이다.


이 엄청난 와인 소비와 발전은 당시 교황청의 기록에 모두 남아있다. 교황청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미사 용 와인에 대한 품종, 수확량, 세금 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게 되며, 당시에는 엄청나게 방대한 기록들이 남게된다. 이는 프랑스의 원산지 관리 표기, 즉 A.O.C. 의 기본 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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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역사는 기원 전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서조차, 예수의 첫 기적을 가나안의 혼인행사에서 물을 와인으로 바꾼 사건이라고 기록할 정도이니, 중동과 유럽의 문화에는 와인이 빠질 수가 없다. 사람보다 신앙이 우선이였던 이 시절에, 와인은 신이 주신 선물이자, 신을 만나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중세의 와인 문화와 기술은 뿌리를 점점 내리며, 르네상스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다.


단순한 와인 소비보다는, 와인의 발전과정과 역사를 함께 연결하여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이 와인들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긴 역사와 그 가운데에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