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닷페이라는 존재의 등장 – 결제의 미래를 암시하다
2020년 이후, 금융 기술은 우리가 돈을 벌고, 보내고,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그 중심에는 '결제'라는 단어가 있다. 그리고 그 결제를 혁신적으로 재해석한 회사 중 하나가 바로 홍콩의 ‘리닷페이(RedotPay)’다.
리닷페이는 단순한 결제 게이트웨이나 지갑 앱이 아니다.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가상자산과 전통적인 법정화폐, 심지어 자국의 카드 발급까지 모두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결제 플랫폼이다. 이 회사는 본래 B2B 대상 가상카드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최근 몇 년간 Web3 기반 기업들의 인프라 파트너로 도약하며 눈부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플랫폼의 핵심은 ‘경계의 제거’다. 리닷페이는 은행과 암호화폐 지갑 사이의 장벽, 현지 결제와 글로벌 송금 사이의 불편함, 전통 기업과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사이의 이질감—all of that을 무력화한다. ‘모든 형태의 자산이 결제수단이 되는 시대’를 현실화하는 셈이다.
최근 스테이블코인은 급여 지급 방식으로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원격 근무자와 개발자들이 유동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으로 급여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고, 국내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송금 수수료 부담과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으로 급여를 받고자 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닷페이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수락: 기업 고객은 USDC, USDT 등의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받고, 이를 즉시 현지통화로 환전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
가상카드 및 물리카드 발급: Visa/Master 기반 카드 발급을 통해 암호화 자산 기반의 결제가 실생활 소비로 확장된다.
DAO 친화적 API: 법인격이 없는 DAO도 결제 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통합 송금 솔루션: 수취인은 원화, 엔화, 달러, 페소 등 다양한 통화로 수령할 수 있으며, 스마트 계약을 통한 트랜잭션 기록도 보장한다.
이처럼 리닷페이는 금융의 물성을 바꾸고 있다. 단지 결제 수단의 확장이 아니라, 금융 참여자의 정체성과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리닷페이와 유사한 ‘한국형 리닷페이’는 가능할까?
사실 한국은 결제 인프라만 놓고 보면 세계적 수준이다. 간편결제 시장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이 선점하고 있으며, QR코드와 NFC 기반 결제도 빠르게 보급되었다. 문제는 ‘기술의 성숙’이 아니라, ‘금융정책의 경직성’과 ‘기득권 구조의 이질성’이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 기반 결제는 사실상 국내에서는 금기어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결제는 자금세탁 방지(FATF) 규정, 전자금융거래법, 외환거래법 등 다층적인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리닷페이와 같은 구조를 구현하려면, 사실상 은행 면허가 필요하거나 글로벌 파트너와의 연계를 통한 ‘회색지대’ 전략밖에 없다.
즉, 기술은 존재하지만 법은 허용하지 않고, 수요는 있지만 공급은 불안정한 상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닷페이와 같은 서비스는 한국에서야말로 가장 필요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Web3 창업자 증가와 글로벌 자금 수령의 불편함
많은 블록체인 기반 프로젝트들이 국내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정작 DAO 형태로 법인도 없이 법정화폐를 수령하거나 비용을 결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형 리닷페이는 이들의 글로벌 자금 수령과 내부 운영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둘째, 국내외 쇼핑/결제의 비효율성
해외 쇼핑몰에서 암호화폐로 결제하고 싶은 소비자는 많지만, 대부분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바꾼 뒤 다시 카드결제를 진행해야 하는 이중 구조에 시달린다. 만약 한국형 리닷페이가 등장해 스테이블코인-법정화폐-카드 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면, 해외 직구/글로벌 소비에서 압도적인 효용이 발생한다.
셋째, 중소기업의 글로벌 정산 인프라 부족
무역, 콘텐츠, SaaS 등 다양한 분야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고객을 유치하면서도 달러 송금, 수수료 문제, 외환변동 리스크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리닷페이형 통합 솔루션은 이들에게 매우 강력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한국형 리닷페이의 등장을 위한 조건은 세 가지다.
1. 제도적 유연성: 스테이블코인을 ‘화폐’가 아닌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는 규제의 유연함이 요구된다. 예컨대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규제 샌드박스가 열려야 한다.
2. 민간 주도 이니셔티브: 카카오페이나 토스 같은 기존 플랫폼이 아닌, 블록체인/글로벌 기반에 강한 민간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생태계가 바람직하다. 대기업 중심의 폐쇄형 결제 모델은 오히려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
3. 사용자 중심의 설계: 개발자,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DAO, 인플루언서—이 모든 이들이 자산을 ‘받고, 보내고, 쓰는’ 경험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한 카드 기능이 아닌, 자산 유통의 자유로움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리닷페이는 단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넘어,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영토를 설계하는 플랫폼이다. 결제의 본질은 ‘교환의 자유’이며, 이 자유가 불완전한 세계에서는 결국 혁신도 불완전하다.
한국형 리닷페이는 단순한 해외 벤치마크가 아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경제적 자율성과 확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다. 우리는 이제 ‘지갑’이 아닌 ‘시스템’을 상상해야 할 때다. 그것은 중앙이 없는 결제, 국경이 없는 송금, 그리고 화폐를 뛰어넘는 자산의 유통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 질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작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