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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진짜 서둘러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골든타임을 놓치지 마라

by 꽃돼지 후니

디지털 금융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의 상징’으로 치부되던 가상자산은 어느덧 글로벌 금융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의 급등락이라는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한 하이브리드형 디지털 자산이다. 달러 등 법정화폐에 1:1로 연동돼 있고, 언제 어디서든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송이 가능하다. 가상자산의 유연성 + 법정화폐의 신뢰성, 바로 이 조합이 스테이블코인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기축통화로 만들고 있다

최근 24시간 기준 테더(USDT)와 USDC의 거래량은 약 131조 원을 돌파하며, 비트코인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실물경제 내 결제·정산·송금 시스템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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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건 그 이면에 숨은 전략이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자국 통화의 패권을 디지털로 연장하고 있다.

올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GENIUS Act(지니어스 법)’는 스테이블코인의 정의, 발행 조건, 회계 기준을 명문화하고, 준비자산으로 미국 국채 또는 달러 실물 예치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곧 달러 수요와 미국 국채 매입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나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언급할 정도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전체 시장의 99%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 정부의 공식 제도 아래 움직이는 디지털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한국은 아직 ‘회의실 밖’에도 나가지 못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원화 기반 발행 방안 모두 입법 지연, 행정 공백, 정책 갈등 속에 멈춰 있다. 국회는 여름 내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8월로 또 미뤄졌다. 현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민간과 금융권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OBDIA(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정식으로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출범시켰고, 여기에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IBK기업·케이뱅크·수협·BNK·iM뱅크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이 대거 참여했다. 금융결제원까지 이 협의체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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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협의체는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정식 회의를 갖지 못했다. 금융당국의 조직 개편 지연 때문이다. 분과는 실증 프로젝트, 제도화 가능성 검토, 기술표준 축적을 목표로 했지만, 정작 금융당국 수장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는 구조다.

다양한 산업에서 스테이블코인 상표 등록이 진행 중에 있다


은행들은 상표권부터 등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은행들은 시장이 열릴 그날을 대비해 상표권 선점 경쟁에 나섰다. 토스뱅크 48건, KB국민은행은 32건, 신한 21건, 하나 16건, 우리·IBK·iM뱅크 등도 10건 내외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이미 출원했다. 제도가 안 열려도 브랜드부터 먼저 잡겠다는 셈이다.

이 흐름은 이미 산업의 시계가 정부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OBDIA에 참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이 정해지면, 바로 실증과 국경 간 송금, 지역화폐 연동 등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단순 연구를 넘어 금융-기술권 협업 플랫폼으로서 OBDIA의 위상을 키울 것”이라 했다.


정부는 샌드박스라도 열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완벽한 입법’을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가능한 실증부터 착수해야 한다. 바로 혁신금융 서비스 제도(샌드박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시범 적용을 허용할 제도적 여지다. 샌드박스는 그것을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샌드박스를 통해 ‘소규모·한정적 환경에서 발행·사용·정산’을 실험하고, 회계 기준·통화 안정성·시장 반응 등을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샌드박스조차 ‘사전 심사’라는 불문율에 묶여 사실상 막혀 있다.
이처럼 정부가 애매한 태도를 고수하면 결국 기술은 외부로 빠져나가고, 기회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골든타임은 멀지 않았다, 이미 시작됐다

전 세계가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디지털 금융 질서의 재편을 시도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향후 디지털 통화 질서 내에서 원화의 존재감은 점점 흐려질 수밖에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더 이상 블록체인의 부속 기능이 아니다.


달러의 디지털 버전이자, 미국 국채의 디지털화된 유통망이며, 금융·산업·무역 전반을 아우르는 기축 통화 인프라다. 우리는 디지털화폐 인프라를 구축할 충분한 기술, 금융, 사용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부족한 건 단 하나, 실행할 용기와 책임 있는 결단이다.


당장 시작하자

한국 금융은 매년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 후진국 수준의 점수를 받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금융 산업 자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규제는 여전히 허가제 중심이고, 새로운 기술은 제도 밖에 갇혀 있으며, 산업과 정책, 기술이 따로 논다. 변화보다 통제가 익숙한 구조다. 글로벌 금융 흐름은 블록체인, 토큰화,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이미 재편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신중론’이라는 이름 아래 멈춰 있다.


그 사이,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금융 질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며 국채 수요와 달러 패권을 디지털로 연결했고, 민간이 발행하되 정부가 설계한 완성형 구조를 만들어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제도도, 실증도, 정책 방향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준비되어 있고, 시장도 열려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 실행이다.


‘골든타임’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입법이 아니라, 작은 실증부터 시작하는 실행의 용기다. 금융을 보호하려다 금융을 고립시키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지 코인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진입하는 열쇠다. 지금 놓치면, 다음은 없다. 이제 진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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