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파를 걷다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베트남 사파에서 배운 삶의 방식

by 꽃돼지 후니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문득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 알림에 반응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어쩌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잊은 채, 그저 당연하게 반복되는 하루.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베트남 북부의 작은 고산 마을 사파(Sapa)는 내게 잠시 멈추는 법을 가르쳐준 소중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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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는 단순히 ‘경치 좋은 산간마을’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곳이다. 해발 1,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였다.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도시의 규칙과는 전혀 다른 질서가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곳에 사는 5개의 소수민족들이 각자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스스로의 공동체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한눈에도 척박해 보이는 산자락을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인디고라는 천연 식물로 옷감을 물들이며, 대마를 직접 직조해 전통 의복을 만들어 입는다. 거친 손으로 재배한 작물과, 자연이 허락한 재료로 만들어진 삶의 모든 것은 어딘가 투박하고 불편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에서 보기 힘든 어떤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찾은 사파 마을에서는 가이드와 함께 트레킹을 하며 민족 마을들을 돌아보았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길을 걷다 보면, 불쑥 나타나는 민가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반겼다. 흙을 밟으며 걷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묘하게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높은 산과 구불구불한 계곡, 들판 위로 펼쳐진 논밭, 그 모두가 나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는 듯했다.


사파 사람들의 삶은 불편할 수 있다. 전기와 수도가 일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불편함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지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은 우리 도시 사람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삶의 리듬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대개 여자 아이들은 16세 즈음 결혼을 하고, 많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이룬다. 이 말만 들으면 다소 답답하고 낡은 전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그것은 ‘정해진 틀’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경쟁도, 조급함도 없이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그들과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내가 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루는 어느 마을의 작은 집에서 한 아이과 눈이 마주쳤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짓과 미소, 그리고 눈빛 하나만으로도 나는 어떤 깊은 위로를 받았다. 마을 식당에 앉자 계곡을 바라보고 전통 식사와 음료를 마시며, 내가 잊고 지냈던 삶의 여유와 따뜻함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애써 찾으려 했던 삶의 본질은, 어쩌면 저 먼 산골 마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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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트레킹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이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이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사파 사람들처럼 살아가기는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되었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이 벅차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사파 마을로의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여행지. 그곳에서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걷고, 잊고 지냈던 삶의 온기를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사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어쩌면 그곳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곳일지도 모른다.

사파 마을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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