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줄 아는 벙어리
안절부절
비행 시간은 아직 여유롭다 생각했다.
하지만 공항 문을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진 줄,
앞도, 뒤도, 옆도 모두 외국 사람들.
낯선 언어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숨조차 조심스럽다.
“Excuse me…”
입안에서 맴도는 단어 몇 개,
발음은 서툴고
목소리는 공기 속에 녹아든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핸드폰 번역기를 내밀지만
그의 눈빛은, 내 말보다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 순간 문득,
학교 다닐 때
영어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지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말할 수 있는 벙어리가 되었다.
시계 초침이 뛰듯
내 심장도 급해지고
줄은 조금도 줄지 않는다.
땀은 손바닥에 맺히고
불안은 가방끈보다 더 조여온다.
‘혹시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수십 번 왕복한다.
사람들은 웃으며 떠들고
나는 침묵 속에 갇혀 있다.
이 긴 줄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며,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안절부절한 여행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