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을 참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침에 속이 출출할 때, 냉장고에서 김 한 통을 꺼내 하얀 쌀밥 위에 올리고 김치를 곁들여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는 그 순간은 내 하루의 시작을 따뜻하게 열어준다. 누군가는 토스트나 시리얼로 아침을 시작한다지만, 나는 김과 밥, 그리고 김치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조합이 주는 충만함을 더 사랑한다. 단순함 속에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김은 늘 내게 보여준다.
김의 매력은 다양하다. 조림 김처럼 간이 배어 촉촉한 김도 좋지만, 불에 살짝 구워내 은은한 불향이 감도는 김을 간장에 찍어 먹을 때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소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간혹 밥 없이 김만 먹을 때도 있다. 짭조름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이 주는 만족감은 다른 과자로 대체할 수 없는 맛이다. 특히 맥주 한 잔과 함께할 때면, 그야말로 최고의 안주가 된다. 어느 날은 집에서 혼자 김 한 봉지를 뜯어 맥주를 곁들이며,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하고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트레킹을 하거나 시골 여행을 갈 때도 김은 늘 나와 함께한다. 산길을 걸어 내려와 백반집에 들르면, 소박한 반찬들 사이에 놓여 있는 김 한 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입에 넣고 밥과 함께 씹다 보면, 산에서의 피로가 단숨에 풀리는 듯하다. 김을 몇 번이고 리필해 달라고 부탁하다가, 눈치를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김은 내게 특별하다.
특히 전라도 어촌을 여행할 때면, 일부러 지역 김을 사서 집으로 가져오곤 한다. 잘 포장해 냉동고에 보관해 두면, 그 김을 꺼내 먹을 때마다 바다 향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김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그 지역의 바다와 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담긴 선물 같다.
김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김밥도 좋아하게 되었다. 김밥은 그야말로 김이 주인공이 되는 음식이다. 간식으로 먹는 김밥도 좋지만, 트레킹이나 등산을 갈 때 챙겨 가는 꼬마김밥은 더욱 특별하다. 짐 속에서 김밥을 꺼내 먹는 순간, 그 고소한 맛이 산의 바람과 어우러져 배로 맛있어진다. 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면, 거실에 산처럼 쌓아두신 김밥을 오가며 하나씩 집어 먹던 추억은 여전히 내게 즐거움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 김 속에 싸여 있던 것이었다.
친구 동생이 만들어준 ‘아트김밥’도 빼놓을 수 없다. 밥보다 제철 야채와 시금치를 듬뿍 넣어 두툼하게 만든 아트김밥은 맛뿐만 아니라 모양에서도 특별함이 있었다. 평소보다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김밥을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행복이 퍼졌다. 나는 염치없게도 그 이후로 틈만 나면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아트김밥의 고소함과 신선한 맛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김과 김밥을 사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밥 맛집도 찾아다니게 되었다. 최근에는 광장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누드김밥을 맛보았다. 밥과 김의 위치를 바꾸고, 참치와 치즈를 넣어 현대적으로 변형한 김밥이었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화려하고 독창적인 시도였지만, 나는 여전히 김과 밥, 그리고 신선한 야채가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김밥을 더 좋아한다. 참치, 고기, 치즈가 들어간 김밥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김밥의 매력은 결국 서민적인 단순함과 소박함에 있다고 믿는다.
요즘 유행하는 ‘셰프 김밥’도 맛있지만, 나는 여전히 시골 장터에서 할머니 손길로 말아낸 따끈따끈한 김밥이 더 좋다. 갓 지은 밥에 김을 얹어 정성스럽게 돌돌 만 김밥은 겉모습이 세련되지 않아도 진한 맛이 있다. 그 안에는 화려한 재료 대신 정성과 푸근함이 담겨 있다. 김밥은 원래 서민의 음식이다. 도시락 속 김밥 한 줄이 주던 설레임, 소풍날 엄마가 싸주신 김밥의 맛, 그 서민적인 감성과 정서가 바로 김밥의 본질이 아닐까.
긴 트레킹을 하다 잠시 쉬어갈 때 먹는 김밥은 언제나 꿀맛이다. 배고픔이 더해져서인지, 아니면 자연 속에서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김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특히 산 정상에서 끓여 먹는 라면과 함께 곁들이는 김밥은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다. 매콤한 국물과 김밥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며, 온몸에 땀을 흘리고 올라온 보람을 두 배로 느끼게 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부러움이 필요 없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많은 순간에 김과 김밥이 함께 있었다. 혼자일 때도, 가족과 함께일 때도, 여행길에서도, 김은 내 곁을 지켰다. 단순한 음식이지만, 그 속에는 바다의 향기와 어머니의 사랑, 사람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김을, 그리고 김밥을 사랑할 것이다. 김밥을 싸 들고 산을 오르며, 다시금 그 소박한 행복을 곱씹을 것이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김밥은 '믿음직스럽고 안정적인 음식'으로 묘사되며, 그녀의 일상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중요한 소재를 보면서 내 마음은 더 깊이 공감했다. 주인공 우영우는 회식 자리에서도 김밥을 고집한다. 더 놀라운 건 아버지가 김밥 가게를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김밥을 선물로 사올 만큼 진정한 김밥 애호가라는 점이다. 그녀의 김밥 사랑은 단순한 입맛이 아니라, 김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김밥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듯해 괜히 따뜻했다.
심지어 최근 글로벌 K콘텐츠인 케이팝 데몬헌터스에서도 여주인공들이 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김밥이 그저 한국의 서민 음식이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인이 함께 나누는 이야기의 상징처럼 쓰이는 것이다. 덕분에 김밥은 이제 일본의 스시가 아닌 한국 고유의 ‘명사’를 넘어 K콘텐츠가 만들어낸 ‘고유명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김은 내게 음식 이상의 의미다. 그것은 하루를 여는 작은 위로이자, 길 위에서 만나는 든든한 동반자이며, 가족의 사랑과 추억을 잇는 다리다. 김밥은 내 삶의 한가운데 자리한 소박한 예술이자, 서민의 행복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말할 것이다.
“나는 김밥을 사랑한다. 유발난 김밥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