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와 가상자산사업자(VASP) 겸업 규제

막혀 있지만 멈추지 않는 금융의 방향

by 꽃돼지 후니

지금 한국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자산 움직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규제는 아직 과거에 있고, 시장은 이미 미래로 이동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 STO, RWA, 디지털 월렛, 플랫폼 결제.
이 모든 단어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금융권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 있다.

금산분리와 가상자산사업자(VASP) 겸업 규제는 과연 디지털 금융 시대에도 유효한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 벌어지는 금융권의 움직임은 단순한 “신사업 경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이것은 금융 질서 재편의 전초전이다.

황국내 토큰 시장 현.png

금산분리라는 오래된 안전장치

금산분리는 한국 금융 시스템을 지탱해 온 핵심 원칙이다.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금융 리스크가 실물경제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이 원칙 덕분에 한국 금융은 여러 위기를 지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벌어지는 변화가 과거에 설계된 위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자산은 공장도 아니고, 부동산도 아니며, 전통적 의미의 산업자본도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 기반 금융 인프라다.

즉, 금산분리가 막으려 했던 위험과 지금 등장한 위험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VASP 겸업 규제가 만드는 구조적 긴장

가상자산사업자(VASP) 규제 역시 투자자 보호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필수 장치로 등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규제는 또 다른 긴장을 만들고 있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구조다.

은행은 커스터디만, 증권사는 토큰증권만, 거래소는 유통만.

이렇게 조각난 구조에서는 글로벌 디지털 금융과 경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해외는 이미 발행·유통·결제·수탁이 연결된 통합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문제는 규제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미래 구조와 규제의 설계 논리가 서로 다른 시대에 있다는 점이다.

국내 디지털 자산 구도.png 주요금융권 디지털자산 신사업 전략 - 출처:이데일리

그럼에도 금융권은 왜 멈추지 않는가

그런데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규제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금융권의 움직임은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다.

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커스터디를 준비하고, 증권사는 STO와 RWA로 투자 영역을 넓히며, 카드사는 일상 결제망을 실험하고, 플랫폼 기업은 디지털 월렛과 거래 생태계를 연결한다.


이것은 단순한 선점 경쟁이 아니다.

금융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본능적 감지에 가깝다.

예금 중심 수익 구조는 흔들리고, 결제 네트워크는 블록체인으로 확장되며, 자산은 토큰화되어 유통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 흐름을 모른 척하는 순간 금융사는 혁신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에서 배제될 위험을 맞게 된다.

그래서 규제가 남아 있어도 금융권은 멈출 수 없다.

지금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규제는 장벽이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

디지털 금융 시대의 규제는 과거와 다른 역할을 요구받는다.

막는 규제가 아니라 질서를 설계하는 규제다.

금산분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소유”를 기준으로 한 분리는 “데이터와 네트워크” 중심 금융에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VASP 규제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분리만 강조하면 통합 금융 모델은 한국 밖에서 먼저 완성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어디까지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미래 금융의 경쟁력은 허용 범위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 설계의 정교함에서 나온다.


이미 시작된 금융의 재편

지금 한국 금융권이 보이는 움직임은 규제 충돌 속의 혼란이 아니라 새 질서로 이동하는 초기 진동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를 바꾸고, STO는 자산 유통을 바꾸며, 커스터디는 금융의 안전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

이 변화는 느려 보이지만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과거 인터넷 금융이 그랬고, 모바일 결제가 그랬으며, 플랫폼 금융이 그랬다.

지금의 디지털자산도 같은 길 위에 있다.


규제를 넘어 구조로

금산분리와 VASP 겸업 규제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금융의 안정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지만 이제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해져야 한다.

금융의 미래는 어디에서 만들어질 것인가.

안정만 선택하면 미래는 외부에서 완성되고, 혁신만 선택하면 위험은 내부에서 커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안정 위에서 작동하는 혁신, 그리고 혁신을 품을 수 있는 규제 구조다.

지금 한국 금융권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이유는 바로 그 균형점을 누군가는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금융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남은 것은
누가 그 질서를 설계하느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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