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마음속에 ‘단골집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대접하고 싶을 때, 위로하고 싶을 때, 혹은 축하하고 싶은 날이면 나는 늘 그 단골집을 떠올린다. 단순히 식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음식이 매개가 되어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고, 그날의 온기가 오래도록 남는다. 나에게 ‘주마카세’는 그런 곳이다.
주마카세의 매력은 첫 번째로 ‘희소성’이다. 예약이 쉽지 않다. 사장님이 반드시 자리에 있어야만 문이 열린다. 외부 일정이 있거나 몸이 안 좋으면 그날은 열리지 않는다. 게다가 하루에 단 한 팀만 받는다. 그래서 날짜를 정할 때도, 누구를 초대할 때도 ‘운명처럼 맞아야’ 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이 귀한 자리에 몇 번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
주마카세의 메인은 언제나 ‘제철’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식재료가 달라지고, 손님은 그날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상을 받는다. 그래서 첫상부터 끝상까지 매번 새롭고, 기대와 설렘이 공존한다. ‘오늘은 어떤 바다의 맛이, 어떤 들의 향이, 어떤 산의 기운이 밥 위에 올라올까.’ 이런 작은 궁금증들이 식사 내내 대화의 주제가 된다.
이번 3월, 오랜만에 친한 지인을 위로하는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이번 주, 주마카세가 처음 문을 여는 날이었다. 봄이 제철이니만큼 ‘봄나물 한상’이 테마였다.
첫상은 해삼멍개와 돗나물, 문어숙회, 소고기잡채, 그리고 열 가지 봄나물로 시작했다. 봄의 향이 한 입마다 피어올랐다. 두 번째 상에는 도가니수육전골, 민어조기, 닭목살양념구이가 나왔다. 어느 하나 지나치지 않고, 각자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마지막 상은 남은 봄나물 위에 계란후라이를 얹은 비빔밥이었다. 그 단순한 한 그릇에 봄의 여운이 담겨 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과일까지 완벽했다.
그날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술이었다. 후배가 교수와 대기업 대표를 모시고, 1막 인생을 마무리하는 큰 선배를 위해 가져온 술이 있었다. ‘일품진로 오크25’와 ‘경주법주 21년’. 이름만 들어도 존재감이 느껴졌다. 인생의 깊이에 어울리는 술이었다. 후배는 “일품인생을 살아오신 선배님을 위한 술입니다”라며 웃었고, 그 한 마디에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덕담 하나하나가 짜릿했고, 동시에 행복했다.
주마카세는 공간부터가 특별하다. 밀폐된 아지트 같은 곳에서 단 한 팀만을 위한 식사가 열린다. 대접하는 이가 초대한 손님들과 마음껏 떠들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다른 손님을 신경 쓸 필요도, 소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마음이 동하면 벽에 글을 남길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공간의 벽에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낙서를 남기고, 누군가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그 흔적들이 모여 주마카세만의 시간의 층을 만든다. 나는 그 벽을 볼 때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웃음이 오갔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날 우리도 오랜만에 아이처럼 웃었다. 나이, 직함, 사회적 위치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냥 친구였다. 음식이 주는 힐링과 사람 사이의 온기, 그 단순한 조합이 이렇게 크나큰 행복이 될 줄은 매번 새삼스럽다.
주마카세가 특별한 이유는 단골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보통 가게라면 ‘영업시간’이 있고, ‘마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제약이 없다. 주인이 “충분히 즐겼다고 느끼는 순간, 그게 마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도 그날 10시가 넘도록 머물렀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웃고, 이야기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봄밤을 만끽했다.
사장님은 그런 손님들의 모습을 좋아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지인들과 식사하던 자리였어요. 그런데 몇몇 분이 자기 지인을 초대해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냥 제가 먹는 방식으로 하면 되나요?”
“그걸 원합니다.”
그 대화 한 마디가 주마카세의 시작이었다. 입소문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퍼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장님이 자주 열지 않는다. 그 점이 오히려 더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더 재미있는 건 술을 가져와도 콜키지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장님은 음식값 중 일부만 받는다. 대부분은 식재료비와 조금의 인건비 정도. 그런데 그 ‘인건비’는 종종 사장님이 직접 합석해 술 한 잔 나누는 것으로 대신된다. 강남 한복판에서 이렇게 진심 어린 한 상을, 그것도 합리적인 가격에 받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엔 지인들이 하나같이 묻는다. “나도 다음엔 함께 갈 수 있을까?”
그럴 때면 난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장님 일정이 맞아야 해.”
그러면 그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꼭 전화해달라고 부탁 좀 해줘.”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보통 손님이 가게에 맞춰 일정을 짜는 게 아니라, 이곳은 가게가 손님에게 맞춰 문을 연다. 하지만 이 ‘뒤집힌 관계’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신뢰의 분위기, 그게 주마카세의 진짜 본질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이번 봄에는 그 사람과 함께 주마카세를 가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계절마다, 인연마다 주마카세는 함께해왔다.
이곳은 단순한 단골집이 아니라, 내 삶의 소중한 기록이 채워지는 공간이다.
참고로 주마카세는 가게 이름이 아니다.
사장 별명이 주마카세고, 가게 이름은 딸부자네불백이다.
내가 가는 곳은 "딸부자네불백 가로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