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저녁 테이블 대화가 바뀌었다.
예전엔 “요즘 뭘 만들고 있어?”가 엔지니어들의 인사말이었다면, 이제는 “에이전트 몇 개나 돌리고 있어?”로 대체됐다. 언뜻 보면 농담 같지만, 실제로 이 말은 지금 실리콘밸리의 경제 문법이 바뀌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문장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토큰맥싱(Tokenmaxxing)’이라는 낯선 단어가 있다. 구글, 오픈AI,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들은 이제 자신이 얼마나 많은 “토큰”을 생성했는지 대시보드에서 확인한다. 흥미로운 건 이 수치가 공식적인 성과지표는 아니지만, 은근한 경쟁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내 후배가 토큰 대시보드에서 상위권이던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토큰은 AI 모델이 텍스트, 코드, 이미지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최소 단위다. 과거 개발자가 코드를 직접 작성했다면, 이제는 AI에게 명령(prompt)을 주고, 그 결과로 수십만 개의 토큰이 쏟아진다. 다시 말해 토큰 사용량은 ‘AI를 얼마나 잘 부리고 있는가’를 상징한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토큰은 곧 매출이자 성장의 단위다. 젠슨 황은 GTC 2026에서 “컴퓨트가 없으면 토큰이 없고, 토큰이 없으면 매출도 없다”고 단언했다. 사티아 나델라는 더 나아가 “우리가 최적화해야 할 것은 와트당, 달러당 토큰 수”라고 선언했다.
이 말은 산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생산 단위이며, 기업이 창출한 토큰의 양이 곧 기업의 가치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다.
토큰맥싱의 흐름은 AI 스타트업의 매출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앤트로픽은 두 달 만에 매출 전망을 두 배로 올렸고, 그 배경엔 에이전트 기반 코딩 도구의 폭발적인 이용 증가가 있었다. 오픈AI의 코딩 에이전트 ‘코덱스(Codex)’는 주간 활성 사용자가 3배, 토큰 사용량은 5배로 늘었다. 구글은 자사 AI가 한 달에 1.3경 개 이상의 토큰을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이쯤 되면 “토큰이 새로운 경제 단위다”라는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이 패러다임의 무게를 젠슨 황은 ‘제4의 스케일링 법칙(Agentic Scaling)’이라 명명했다. 사전학습, 사후학습, 테스트타임 스케일링을 거쳐 이제 AI가 AI를 부르는 시대, 즉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를 생성하고 협력하며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단계다. 하나의 명령이 수천 개의 토큰을 낳고, 이들이 다시 또 다른 명령을 생성한다.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논리와 실행의 고리를 이어가며 새로운 형태의 생산 라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AI 덕분에 앱과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이 압도적으로 쉬워졌다. 클릭 몇 번, 짧은 대화만으로 MVP를 띄우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편의성은 역설적으로 기존 개발자들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대규모 개발자 채용이 줄었고, 개발 공급가도 빠르게 하락 중이다. 대신 등장한 건 ‘1인 창업자’와 ‘AI 기획자’들이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하고, 필요한 기능을 AI에게 설계·개발·테스트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네이버는 사내 AI 도구를 통해 직원별 에이전트 사용량을 집계하기 시작했고, 카카오는 ‘토큰 효율성’이라는 내부 지표를 신설해 서비스 개선을 진행 중이다. 삼성과 LG의 일부 조직은 이미 ‘AI 퍼스트 워크플로우’를 도입해, 회의록 작성부터 코드 리뷰, 시장 리서치, 고객 응대까지 대부분의 반복 업무를 AI에게 위임하고 있다.
서울 테크 신(Scene)에서도 “요즘 몇 개의 에이전트를 돌리고 있냐”는 말이 회자된다. 과거의 ‘야근’이 근면함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에이전트를 몇 대 병렬로 돌려놓았는가”가 생산성의 척도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있는 (주)핑거도 회사 차원은 아니지만 부서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듯 하다. AI를 잘 활용하는 개인에게 부서가 토큰 비용을 지원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얘기되고 있다.

이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시키는 것’이다.
AI를 도구로 부리던 채에서 벗어나,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엔지니어들은 더 이상 코드를 치며 밤을 새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모델을 연결하고, 자동화를 설계하고, AI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학습시킨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트렌드가 아니다. AI 시대의 노동 구조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예전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AI에게 어떤 일을 맡길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 된다.
결국 “에이전트 몇 개나 돌리고 있어?”라는 말은 단순한 자랑이나 유행이 아니다.
이 질문 안에는 새로운 경제 체계, 새로운 일의 방식, 그리고 인간의 역할이 어디까지 대체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집단적 실험이 담겨 있다.
AI의 시대에 진짜 경쟁력은 ‘더 많이 코딩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더 잘 시키는 사람’에게 있다.
토큰맥싱은 그 실험의 전면에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은 이미, 우리 곁에서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