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1편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와 키안티(Chianti) 와인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경험 많은 와인 애호가나 전문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키안티 클라시코 한 잔 할까?'라는 질문에 '그래, 나 키안티 좋아해' 같은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다. '클라시코'는 종종 생략된다. 이해는 간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꼭 키안티 중에 특별한 와인이나 급이 높은 와인 정도로 보이니까. 하지만 키안티 클라시코는 키안티와 완전히 다르다. 생산 지역, 생산 규정이 다르고 원산지 통제 명칭(DOCG)도 완전히 구분돼 있으니까. 그러니 위 문답은 '메독(Medoc) 와인 한 잔 할까?'라는 질문에 '그래, 나 그라브(Graves) 좋아해'라고 답한 것과 마찬가지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신용산역과 용산역이 다르고, 상왕십리와 왕십리는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기원
키안티 클라시코는 토스카나(Toscana) 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약 7만 헥타르(ha)의 넓은 와인 산지다.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a) 사이의 높고 낮은 언덕들이 겹겹이 펼쳐진 구릉지대로, 이 지역은 로마시대 이전 에트루리아 인들이 살던 시절부터 포도 재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고전적 키안티(현재의 일반 '키안티'와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르려 한다)' 와인을 언급한 공식적인 기록은 14세기부터 일찌감치 등장한다. 15세기 이후 교황들이 즐겨 마실 정도로 품질이 뛰어난 와인이었으며, 미켈란젤로의 사사를 받은 화가이자 건축가, 문필가였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고전적인 키안티' 생산 지역의 풍경과 와인의 높은 품질에 대한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최초로 '고전적 키안티' 생산 지역을 규정한 것은 1716년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Cosimo III) 때다. 르네상스의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3세는 빼어난 와인 품질은 생산 지역의 테루아(Terroir)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당시에도 '고전적인 키안티'의 인기는 대단해서 영국 등으로 수출하는 다른 와인에 거짓으로 '키안티'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고전적 키안티' 생산 지역에 대한 규정은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사기를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고전적 키안티'의 인기는 지속됐고, 20세기 들어서는 그 수요를 주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주변에 위성 도시가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규정된 생산지 외각에 '고전적 키안티'와 유사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1924년, 규정된 생산지의 와이너리들은 와인의 품질과 그 품질을 드러내는 원산지 표시를 지키기 위해 협회(Consorzio per la tutela del vino tipico del Chianti e della sua marca di origine)를 설립하고 앞서 언급한 화가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검은 수탉을 상징으로 선택했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품질을 보증하는 검은 수탉 로고의 시작이다. 높은 품질로 인기를 누렸던 '고전적 키안티'는 그들을 모방하면서 생겨난 '일반 키안티'와 처음부터 확실한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1932년 '클라시코'라는 표현을 통해 지정된 지역에서 생산한 '고전적 키안티'와 그 밖의 지역의 '키안티'를 공식적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명확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1967년 DOC, 1984년 DOCG 지정 후에도 이어졌고, 1996년 키안티 클라시코가 완전히 독립된 DOCG가 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키안티'와 다른 '키안티 클라시코'
그렇다면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는 어떻게 다를까. 키안티 클라시코만이 지닌 전통과 품격 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생산 지역의 완전한 구분이다. 아래 지도의 진한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키안티 클라시코, 그 바깥에 흐린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키안티다. 중심의 키안티 클라시코를 키안티 산지가 둘러싸고 있어 마치 키안티 지역 내에 키안티 클라시코가 포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키안티 클라시코 외곽 지역에 키안티 스타일 와인 생산 지역이 생겨난 역사에서 기인한 모양일 뿐이다. 키안티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로는 절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만들 수 없다. 게다가 키안티 클라시코 생산 지역에서 키안티 와인을 만드는 것도 금지돼 있다. 둘은 그저 이웃해 있을 뿐인 완전히 다른 산지다.
생산 규정도 다르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산지오베제(Sangioves) 품종을 80% 이상 사용해야 하며 허용된 레드 품종을 20%까지 블렌딩 할 수 있다. 화이트 품종의 사용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러나 키안티는 산지오베제 사용 기준이 70%까지 낮아지며, 화이트 품종도 10% 섞을 수 있다. 재배 면적 당 수확량 또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ha 당 7.5톤, 나무 한 그루 당 2kg으로 제한되지만, 키안티는 ha 당 9톤, 나무 한 그루 당 3kg로 기준이 훨씬 느슨하다. 그러니 포도의 완숙도 및 당도가 다르고, 결과적으로 최소 알코올 함량 기준도 키안티 클라시코(12%)가 키안티(10.5%) 보다 훨씬 높다. 최소 숙성 기간 또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12개월, 키안티는 그 절반인 6개월이다. 여러 모로 키안티 클라시코가 키안티보다 더욱 진하고 개성이 잘 드러나는 와인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3단계 퀄리티 피라미드
2013년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 규정에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생산하던 아나타(Annata)라고 부르던 기본급 키안티 클라시코 및 리제르바(Riserva) 위에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라는 새로운 등급을 신설한 것이다. 그란 셀레지오네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와이너리가 직접 소유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양조하고, 3개월의 병입 숙성 포함 최소 30개월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하며, 키안티 클라시코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키안티 클라시코의 특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우수한 품질의 와인만이 비로소 그란 셀레지오네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명실공히 키안티 클라시코 최고의 와인들만 그란 셀레지오네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외에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24개월 이상 숙성, 키안티 클라시코는 12개월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한다. 또한 와이너리는 생산한 와인으로 어떤 등급의 와인을 출시할지 반드시 먼저 신고하여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는 키안티 클라시코의 세 등급 별 특징과 품질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중심에는 산지오베제 품종이 있다. 산지오베제만 100% 사용해 키안티 클라시코를 만들 수도 있고, 규정된 레드 품종을 20%까지 블렌딩 할 수도 있다. 허용된 레드 품종에는 콜로리노(Colorino), 카나이올로(Canaiolo Nero) 등 토착 품종은 물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시라(Syrah) 등 국제 품종도 포함된다. 개별 와이너리들은 각 등급 별 생산 규정과 허용된 품종을 적절히 조합하여 키안티 클라시코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뉘앙스를 드러내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한 키안티 클라시코는 (전통적인 형태의 플라스크를 제외하면) 반드시 각진 어깨의 보르도 스타일 병에 담겨 있으며, 병목이나 레이블 등에 부착된 '검은 수탉'로고를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와인을 살 때 검은 수탉이 눈에 보인다면 믿고 구매해도 좋다. 역사와 훌륭한 테루아, 그리고 생산자의 노력이 맛과 품질을 보증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