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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와인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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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 척한 고냥이 Dec 15. 2018

와인셀러, 살까 말까?

중요한 포인트는 '와인 라이프' 스타일

와인은 시간의 음료다. 특히 고급 와인일수록 시간과 함께 변화해 가며 그 복합적인 풍미와 진정한 매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빨리 마시는 것이 바람직한 와인일지라도 빛과 열, 진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와인 애호가가 되면 - 그러니까 와인을 즐기는 횟수가 늘어나고, 재고 와인이 2-30병을 넘어서며, 그중에 프리미엄 와인들이 몇 병 섞이게 되면 - 와인셀러 구입을 고려하게 된다. 특히 기념일을 위해 특별한 빈티지를 구입하거나, 올여름 기온이 최고치를 찍을 것이라는 뉴스라도 접하게 되면 그런 욕구는 더욱 커진다. 몇 병 규모의 와인셀러를 구매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개미지옥에 빠진 것이다. 다양한 브랜드를 체크하고, 구입자들의 후기들을 검색하는 등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와인셀러는 기본적으로 규모가 크고, 비교적 고가의 가전제품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양한 와인셀러들을 살펴보고 제품 리뷰들을 읽다 보면, 결국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정말 사야 하나? 물론 와인셀러가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어쨌거나 내 와인을 최적의 상태로 안전하게 지켜 줄 테니까. 하지만 구매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저런 고장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보관 품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의 유명 브랜드들은 가격이 너무 비싼 듯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와인셀러를 살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와인을 더 사 마시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물론 수집과 보관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도 있으므로 꼭 그런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이 소위 ‘지름신'을 해방시키는 경우가 많다. 와인셀러에 걸맞은(?) 고가의 와인을 더욱 자주 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과연 와인셀러,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편안한 와인 라이프를 위해, 와인셀러 하나쯤은 있어야!

연중 끊이지 않는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와인장터에서 수시로 와인을 대량 구매하거나 단골 와인 샵에서 희소한 와인을 자주 구입하는 경우, 혹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고가 와인을 구입할 기회가 많은 경우 아무래도 보관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본인의 생일이나 결혼, 자녀의 탄생 등 의미 있는 빈티지를 구매하거나 사연이 있는 특정 와인을 구매하는 경우 그 와인을 소비하는 시기는 비교적 먼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잠시만 나쁜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와인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아무 데나 보관하기엔 부담스럽다.


와인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는 자신의 저서 <보르도 와인(Bordeaux)> 에서 적절한 와인 보관 환경에 대해 ‘섭씨 18.3도에서 12.8도 사이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냄새와 진동, 빛이 없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특히 장기 숙성을 위해서는 섭씨 12.8도가 가장 이상적인 온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온도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와인셀러 구입 밖에 없다. 몇 년 이상의 장기 숙성을 원한다면 와인셀러가 가장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와인셀러의 성능, 특히 정온 및 습도 유지 기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국내외 메이저 회사에서 출시한 와인셀러는 어느 정도 검증된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어쨌건 와인을 셀러에서 보관하면 최소한 더운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급격한 온도 변화에서 와인을 보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L사의 와인셀러를 12년 동안 별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와인셀러는 몇 가지 부가적 편의를 제공한다. 우선 수많은 와인들을 정리해 주는 와인 랙(wine rack)의 역할. 몇십 병, 심지어는 몇 백 병의 와인을 상자나 서랍 등에 보관하는 것보다 와인셀러에 차곡차곡 넣는 것이 훨씬 깔끔하고 출납 또한 편리하다. 또한 와인을 바로 꺼내어 마시기에도 좋다. 화이트 와인은 스타일에 따라 바로 마시거나 몇 분 정도만 칠링 하면 되고, 레드 와인의 경우는 잠깐 상온에 두면 딱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된다. 일반적으로 실내에서 보관한 레드 와인, 특히 더운 여름에 상온에서 방치된 레드 와인은 권장 음용 온도를 훌쩍 넘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마시기 전에 와인의 온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와인셀러가 있다면 이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이렇게 음용 편의를 주목적으로 와인셀러를 구매한다면 20병 이하의 작은 셀러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와인셀러로 인해 와인 보관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장점이다. 마음 편한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으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 마실 와인을 굳이 와인셀러에?

흔히 와인 보관에는 빛, 열, 습도, 진동, 냄새 등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어둡고 서늘하고 습하며 온도 변화가 급격하지 않고 진동과 냄새가 없는 곳에 와인을 보관하라는 얘기다. 진동과 빛, 그리고 냄새의 통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온도, 그리고 습도를 통제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반 가정집의 실내 온도는 아침저녁으로 섭씨 5도 이상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다. 습도 또한 와인의 적정 보관 습도라고 알려진 7-80%에 턱없이 모자란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절대 조건일까? 오히려 전체적인 조건과 맥락 안에서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닐까?


우선 일반적인 와인 소비 패턴을 생각해 보자. 파인 와인(fine wine) 수집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인 구매 후 몇일에서 몇 주 내에, 길어야 1~2년 내에 마시게 될 것이다. 심지어 와인 모임에 가 보아도 비교적 어린 빈티지의 프리미엄 와인들이 테이블에 올라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숙성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코르크를 여는 것이다. 게다가 시중에서 팔리는 와인들은 대체로 몇 년 내에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중저가의 편안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어린 와인을 중심으로 회전과 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과 환경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짧은 기간을 보관하는 데도 와인셀러가 반드시 필요할까?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된 일본의 와인 만화 <소믈리에르>와 <소믈리에>의 감수를 맡은 와인 전문가 호리 켄이치는 <소믈리에> 8권에 삽입된 칼럼에서 보관 온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시한다. 미국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Napa Valley Cabernet Sauvignon) 품종의 최신 빈티지 열 두 병을 반으로 나누어 여섯 병은 섭씨 14도의 와인셀러에서, 나머지는 여름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실내에서 1년 넘게 보관한 후 와인 전문가들이 블라인드로 시음하도록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실온에서 보관된 와인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았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어떤 와인이 셀러에서, 혹은 실내에서 보관된 와인인지 구분하는 데도 실패했다. 물론 이 실험만으로 섣불리 와인셀러 보관의 실효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보관 온도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반증은 될 수 있다. 


또한 습도에 대해서도 참고할 만한 코멘트가 있다. 미국의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 주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는 매트 크레이머(Matt Kramer)는 그의 저서 <와인력(Making Sense of Wine)>에서 ‘병 숙성에 습도는 전혀 불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75%라는 습도는 전통적으로 와인 저장고의 습도이지만, 본디 병입된 와인을 위한 습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습도가 숙성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검증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굳이 꼭 와인셀러를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조만간 마실 와인들이라면 이제껏처럼 장롱 깊은 곳이나 서늘한 서재 구석에 눕혀서 보관해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말이다. 볕이 들지 않는 다용도실이나 창고가 있다면 더욱 안성맞춤. 단골 와인 샵에서 목재로 된 와인 박스를 몇 개 얻어 그 안에 차곡차곡 보관한다면 나름 운치도 있을 듯하다. 간혹 쉽게 마시기 어려운 고가의 와인이 생긴다면? 널직한 와인셀러가 있는 단골 레스토랑에 보관을 부탁하는 방법이 있다. 어차피 그런 와인을 아무렇게나 집에서 따 마실 가능성은 적을 테니까. 



정리해 보자. 와인셀러를 사면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의 편익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편익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비용 대비 만족할 수준인지는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와인 소비 패턴과 구매성향 등을 고려하여 와인셀러 구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와인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와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변질돼버리는 음료는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와인에게 물어보자. 정말 와인셀러가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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