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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 척한 고냥이 Oct 22. 2021

포도 품종 : 산지오베제

(Sangiovese)


제우스의 피(sanguis Jovis). 산지오베제라는 이름의 어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피에 비견될 정도라니, 예로부터 산지오베제가 얼마나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품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도 이탈리아에서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품종으로, 토스카나(Toscana)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에서 활발히 재배하고 있다. 지역 별 토착 품종이 다양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산지오베제는 대세 중의 대세인 셈이다. 다만 제우스의 힘이 이탈리아 밖에까지 미치긴 어려웠는지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재배하지 않는다. 과거 이탈리아의 영토였던 코르시카 섬을 비롯해 그리스, 북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일부 재배하고 있다. 실험적인 재배가 점차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다른 나라의 산지오베제 와인에 관심을 가지기엔 이른 것 같다.


산지오베제는 와인 애호가들의 추앙을 받는 아이콘 와인부터 매일 편하게 즐기는 저렴한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다재다능한 품종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맑은 루비 컬러에 바디감도 무겁지 않지만, 의외로 타닌 함량이 많고 신맛 또한 강해 섬세한 터치와 강건한 구조를 겸비한 와인을 만든다. 산지오베제의 싱그러운 붉은 베리 아로마, 가벼운 허브와 스파이스 뉘앙스, 영롱한 미네랄 힌트는 대단히 매혹적이며, 오크 숙성한 와인과 오크를 사용하지 않은 와인 양쪽 모두에서 매력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산지오베제는 재배가 쉽지 않은 품종이다. 일찍 싹을 틔우고 늦게 익기 때문에 재배 기간이 길며 잘 익지도, 균일하게 익지도 않는다. 또한 생산성이 지나치게 좋은 편이라 풍미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확량 조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재배면적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산지오베제가 매력적이고 장점 또한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산지오베제는 유전적으로 변종이 발생하기 쉬운 품종이다. 1980년대 토스카나 주요 와이너리들의 주도로 시작된 클론 연구 결과 산지오베제 클론은 총 116개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각 지역의 생산자들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포도밭에 맞는 클론을 심고,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와인을 양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세부 클론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요 산지 별 특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 토스카나의 주요 와인 산지 (출처 : italianwinecentral.com) ]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그리고 키안티(Chianti)

산지오베제를 대표하는 지역은 누가 뭐라고 해도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다. 1719년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Cosimo III)는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전적 키안티'의 경계를 설정했고, 이 영역을 중심으로 확대되다가 오늘날 7만 ha에 이르는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이 정해졌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주변 지역에서도 유사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키안티(Chianti)로 규정된 지역이다. 그 태동부터 현재 규정에 이르기까지 키안티 클라시코와 키안티는 완전히 구별되는 DOCG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키안티의 생산 규정이 좀 더 느슨하며, 생산되는 와인들 또한 좀 더 가볍고 저렴한 와인들이 많다. 그러나 레이블에 키안티의 7개 하위 산지(Rufina, Colli Fiorentini, Montespertoli, Colli Senesi, Colli Arentini, Colline Pisane, Montalbano) 명칭이 함께 표시된 키안티의 경우 상대적으로 뛰어한 품질인 경우가 많다. 특히 루피나의 와인은 발군인데, 국내에도 수입되고 있는 카스텔로 디 니포자노(Castello di Nipozzano)가 대표적인 예다.


검은 수탉 로고가 인상적인 키안티 클라시코는 일반적인 키안티보다 더욱 풍미가 진하고 개성적이다. 등급에 있어서도 기본급(Annata)과 리제르바(Riserva) 외에 키안티 클라시코만의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라는 특별한 등급이 있다. 반드시 와이너리가 직접 소유한 포도밭의 포도로 양조해 최소 30개월의 숙성을 거쳐야 그란 셀레지오네가 될 수 있다. 또한 키안티 클라시코의 개성을 갖춘 우수한 품질의 와인임을 확인하는 키안티 클라시코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명실공히 키안티 클라시코 최고의 와인만이 그란 셀레지오네가 될 자격이 있는 셈이다. 기본급의 숙성 기간 또한 12개월 이상으로 일반 키안티의 6개월보다 길다. 리제르바는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 모두 24개월 이상 숙성해야 한다. 


현재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 모두 산지오베제만 100%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어도 된다. 일반적으로는 규정된 기타 품종을 일부 블렌딩 하는데, 키안티는 30%, 키안티 클라시코는 20%까지 허용한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2006년부터 화이트 품종 사용을 전면 금지한 반면, 키안티의 경우 화이트 품종을 10%까지 사용할 수 있다. 사용 가능한 레드 품종에는 콜로리노(Colorino), 카나이올로(Canaiolo Nero) 등 토착 품종과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시라(Syrah) 등 국제 품종이 포함된다. 하지만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의 풍미와 스타일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산지오베제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피에몬테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베네토의 아마로네와 함께 이탈리아 최고의 레드 와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와인이다. 이탈리아 와인 이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A di B' 같은 구조는 대략 'B지역에서 A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도 마찬가지다. 브루넬로는 몬탈치노 지역에서 산지오베제 품종을 일컫는 이름이니 '몬탈치노에서 산지오베제로 만든 와인'이라는 뜻이 된다. 키안티 클라시코 남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 재배에 대단히 유리한 환경이다. 몬탈치노는 바위 투성이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분위기의 마을로, 주변의 포도밭 또한 대부분 해발 100m에서 500에 이르는 척박한 경사지다. 게다가 여름 내내 무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완숙한 포도를 얻기도 쉽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몬탈치노의 산지오베제는 붉은 베리 아로마와 함께 검은 베리와 가죽 뉘앙스를 겸비한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내며, 풍성한 질감과 충분한 타닌을 더한다. 이런 장점을 살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스타일을 정립한 와이너리가 바로 비온디 산티(Biondi-Santi)다. 그들은 브루넬로의 특징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천천히 침용 및 발효한 다음 커다란 슬라보니안 오크통에서 몇 년, 병입 후 다시 몇 년에서 몇십 년의 긴 숙성을 거쳐 강건하고 묵직한 와인을 만들어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비온디 산티의 와인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몬탈치노의 생산자들이 그들의 방식을 따르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떠올랐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 품종만을 사용해야 하며 오크통에서 최소 2년, 병입 후 최소 4개월 숙성 후 빈티지로부터 5년째 되는 해부터 출시할 수 있다. 리제르바의 경우 최소 오크 숙성 기간은 같으나, 병입 후 6개월 이상 숙성하여 6년째 되는 해부터 출시할 수 있다. 로소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어린 동생 격으로, 똑같이 산지오베제 100%로 만들지만 1년 숙성 후 바로 출시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가볍고 신선한 브루넬로를 즐길 수 있으며, 생산자는 브루넬로에 사용하기는 조금 아쉬운 포도를 이용해 빠르게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에는 더 좋은 포도만 사용해 높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비노 노빌레'는 품종 이름은 아니고 '귀족적인 와인'이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이탈리아의 교황과 귀족들이 즐겨 마셨다는 점에 착안한 이름으로 ‘몬테풀치아노 마을에서 생산하는 귀족적인 와인’이라는 의미다. 몬테풀치아노에서는 산지오베제를 프루뇰로 젠틸레(Prugnollo Gentile)라고 부른다. 몬테풀치아노는 브루넬로에서 동쪽으로 2-30km 거리에 있으며, 브루넬로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기후의 언덕 지대다. 강수량이 조금 더 많지만 배수가 잘 되는 모래 섞인 토양이라 문제는 없다. 다만 최근 비노 노빌레의 위상은 이름과는 조금 다르다. 브루넬로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여겨지며 다른 토스카나 와인에 비해서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비뇨네지(Avignonesi), 보스카렐리(Boscarelli), 폴리지아노(Poliziano) 등 빼어난 생산자들의 와인을 맛보면 왜 이 와인이 귀족적인 와인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다. 최근에는 다른 생산자들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다. 양조 시 산지오베제를 70% 이상 사용해야 하며, 최소 숙성 기간은 오크 숙성 1년 이상을 포함해 기본급 2년, 리제르바 급 3년이다. 로쏘 디 몬테풀치아노(Rosso di Montepulciano)는 짧게 숙성해 수확 다음 해 3월부터 출시할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 이탈리아에서 산지오베제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몬테풀치아노 품종과 헷갈리지 말자. 예를 들어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Montepulciano d'Abruzzo)는 아부르쪼(Abruzzo) 지역에서 몬테풀치아노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이다.



[ 토스카나의 주요 와인 산지 (출처 : italianwinecentral.com) ]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Morellino di Scansano)

토스카나 남부 해안과 가까운 마렘마(Maremma) 지역은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토스카나에서 가장 핫한 지역 중 하나다. 지역민뿐만 아니라 안티노리(Antinori),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체키(Cecchi), 비온디 산티 등 내륙 지방의 주요 와이너리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볼게리(Bolgheri) 지역의 스타일을 모방해 슈퍼 투스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거나, 국제 품종을 포함한 다양한 품종들로 레드,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디저트 등 거의 모든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산지오베제 품종을 중심으로 만드는 DOCG 등급의 와인이 가장 유명한데, 그것이 바로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다. 모렐리노(Morellino)는 이 지역에서 산지오베제를 부르는 이름이며, 스칸사노(Scansano)는 생산 지역 중앙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고도가 높지 않으며 바다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기후를 드러내는 이 지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는 다른 지역의 포도에 비해 신맛은 적고 살집이 좋으며 나긋나긋한 질감을 드러낸다. 산지오베제를 최소 85% 이상 사용해야 하며, 일반급은 수확 다음 해 3월부터,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1년 포함 2년 이상 숙성한 후 출시한다.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스타일

슈퍼 투스칸의 효시는 토스카나 중서부 해안에 위치한 볼게리의 자갈밭 토양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등 보르도 품종으로 만든 사시카이아(Sassicaia)다. 이후 오르넬라이아(Ornellaia), 솔라이아(Solaia), 마세토(Masetto) 등의 슈퍼 투스칸 와인들도 보르도 품종을 중심에 두었지만, 티냐넬로(Tignanello)를 시작으로 플라치아넬로(Flaccianello), 이 소디 디 산 니콜로(I Sodi di San Nicolo) 등 산지오베제 중심의 슈퍼 투스칸도 속속 등장했다. 이는 보르도 품종이 아닌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의 표현임과 동시에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 규정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토스카나 이외 지역

토스카나 외에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움브리아(Umbria), 라지오(Lazio), 마르케(Marche) 등에서도 산지오베제를 재배한다. 토스카나보다 북쪽에 위치한 에밀리아 로마냐의 경우 산지오베제가 완전히 익기에는 조금 서늘한 편이라 다른 품종의 블렌딩 파트너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산지오베제 디 로마냐(Sangiovese di Romagna)와 같이 산지오베제를 85% 이상 사용해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토스카나 남서쪽의 움브리아의 경우 산지오베제를 70% 이상 사용하는 토르지아노 리제르바(Torgiano Riserva)가 1990년 DOCG로 승격되었을 만큼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레드 와인은 물론 로제, 스파클링, 파시토(passito), 빈산토(Vin Santo) 등에 다양하게 산지오베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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