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시장 라디오 방송과 축제방송
1인 방송 자키로 활동하면서 언론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아마 15년 동안 20여 회 이상 소개된 것 같은데 그중에 중앙일보에 소개된 자료가 전통시장
라디오 방송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풍물시장이 아마도 전통시장 중에 가장 최초
라디오 방송이 아닌가 싶다
이전통시장 오픈 당시 서울시 방송자키로 생방송을 소개하면서 전통시장 상인중
세이클럽에서 음악방송을 하던 시제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주축으로 라디오 방송이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 전통시장에 라디오 방송이 보급되어 전국에 40여 개 운영 중이었으나 역시
방송 운영이 힘들어 중단되었거나 보이는 라디오 방송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운영 중인 곳도 있으나 아직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공중파 방송과 같은 시스템으로 시작한 것이 잘못이고 순수한 인터넷 방송이
되어야 하지만 상업성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결국은 운영비가 부족하여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일 것이다
그해답은 오히려 서울시 시민 방송단처럼 운영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경험을 가진 방송자키가
없었다는데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MCN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1인 미디어와 1인 방송자키가 육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사회적 공익가치를 가지고 매체를 키우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에 앞서다 보니 결국 매체가 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1인 미디어와 1인방 송은 매 채로서 그 힘을 가지려면 매체에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시청자 수이며 구독자수에 따르는 것이다
이 기사는 3년 전기사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분야에서 가장 오랜 경험을 가진 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1인 미디어와 1인 방송에 전문가는 바로 미디어를 만들고 1인 방송을 가장 많이 해본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왜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작 1인 방송자키의 이야기는 안 듣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인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자기 분야가 따로 있다
이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기사 내용을 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코 올해 mcn이 소개되고 1인 미디어 방송이 알려져서 급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미 3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지역문화 살리는 이 색 방송맨들
풍물시장서 유쾌 통쾌 라디오 지역축제 현장서 체험 생중계
방송을 통해 지역문화 축제 살리기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풍물시장에서
유쾌한 입담으로 방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캠핑카를 몰고 지역축제를 찾아가 생중계를 하기도 한다
정겨운 시장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 우리 지역의 이야기글을 생생하게 전달하기에 하루 하루가 충분히 보람차다는 이들을 만났다 (한다혜 기자)
두DJ3년쨰 풍자 만담 서민 애환 달래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리한 서울풍물시장,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30분이면 경쾌한 경적소리가 시장에 울려 퍼진다. 이어 아바의 댄싱퀸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상인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밤사이 걸어두었던 장막을 걷는다 , 풍물 라디오의 시그널 으악이 상인들 사이에서 하루 장사를 알리는 모닝콜 약활을 한지 벌써 햇수로 3년이다
상인 여러분 그리고 이 시간 풍문 시장을 찾아주신 고액여러분 풍물 라디오 추억열차의 부르스 리 그리고 사내 인사드립니다
뒤따라 영어 중국어 맨트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이들의 스튜디오는 시장 2층에 차려져 있다 보이는 라디오를 표방한 오픈 스튜디오이다
상인이든 고객이든 지나가다 방송 중인 dj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김없이 스튜디오 안으로 불려 들어간다 지난 7일 취재차 방문했던 기자도 한바밭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방송에 격이 없고 벽이 없다는 것 전통시장 만큼이나 정겨운 풍물 라디오만의 매력이다
이곳에서 녹음하는 방송은 매주 아프리카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기도 한다
풍물 라디오ㅂ는 2010년 서울시 지원을 받아 서울 풍물시장 상인회가 주축이 되어 개국했다
처음 9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명의 dj가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인공은 부르스 리라는 예명의 이종근 씨(51)와 산예라는 예명을 쓰는 김호종(44)씨다
두 dj 모두 풍물 시장 내에서 예전부터 한가닥 했던 상인들이다. 이씨는 반짝이 옷을 차려 입고 시장 내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면서 dj제안을 받았고 김씨는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던 중 dj로 발탁되었다
방송은 매주 추억열차라는 제목 아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이슈를 아우른다
사회 현황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캄럼에서 별들위 고향의 신성일과 안인숙을 맛깔나게 모샤라는 코미디어 역할까지 이두콤비의 dj활동영역은 무한대다. 이들은 신문을 분석하고 유명 에세이지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일주인간 1시간짜리 1회 방송을 준비한다
특히 이씨가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써내려 간 수기대본에 들이는 공은 대단하다
“3년을 같은 자리에서 방송하다 보니 상인들이 와서 피로회복제를 건네주곤 한다 ”는
이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지만 방송이 풍물시장 활성화하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캠핑카에 인터넷 방송국을 차려 전국 누벼
스마트폰 3대와 태블릿 3대 더불어 노트북 3대 데스크톱 2대까지 실시간 모바일 생중계를 위해 심현용 씨 개인이 갖춘 방송장비들이다
여기에 손수 개조한 캠핑카도 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축제 현장을 누비며 13년째 인터넷 방송을 해오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지도자인 그는 “누군가가 낚시를 취미로 삼듯 나에게는 방송이 곧 취미다라고 전한다
인터넷 방송은 40대 후반 무렵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접했다. 채팅정도만 해왔던 그에게 인터넷 방송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40대 이상이 즐길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은 전무했다
20대가 주로 모여있는 인터넷 방송창에 [ 50대에 가까운 심씨가 접속을 하면 “음흉한 의도를 가진 아저씨라는 오해를 받으며 쫓겨나기 일쑤였다. 심씨는 본인이 직접 40-60대를 위한 인터넷 방송을 꾸려보기로 했다
2003년 처음으로 캠핑카를 가지고 이동식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무선인터넷이 생기면서 이동성을 갖출 수 있게 된 점이 레크리에이션 지도를 위해 여러 곳을 움직여야 하는 그의 의욕이 특히 자극했다
더불어 이왕 이동식 방송을 하기로 했으니 음성방송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상으로 한번 송출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심씨의 캠핑카방송시대는 시작되었다
“과연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할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내 얼굴은 하루만 봐도 식상하잖아요
우연한 기회에 문경을 지나던 그는 문경 찻사발 축제 푯말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지겁 가볼 수 없는 이들 , 현장 분위기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다를 것 같아 갈생각을 접어 두었던 시청자들에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후 그의 인터넷 방송국은 가장 최근의 평창송어축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축제들을 소개해 왔다
지역축제를 전하는데 있어 그의 원칙 중 하나는 수용자의 입장에 서서 축제를 생중계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의 얼굴은 중요치 않다 더 궁금한 것은 축제를 즐기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예컨대 송어를 잘 낚는 사람의 만족감을 포착해 시청자로 하여금 축제에 참여하고 싶게끔 만들고 송어를 잘못 낚는 사람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비춰 웃음 짓게 만든다
심씨는 요즘 지역축제 생중계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면서 각 마을 동장 통장 이장ㅇ게 마을방송국을 운영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송파구 거여동에 이미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 종로구 숭인1동 5통 등도 심씨로부터 인터넷 방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마을 자체적으로 행사를 생중계할 능력을 갖춘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소식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생중계방송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지역 방송국이 많아지면 재난 상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