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에 낯선 이름이 떴다.
[ZENDA] 젠다입니다. 접속 요청.
새해 첫날, 새벽 2시.
누가 이런 시간에—이렇게 딱딱한 문장으로—나를 부르는 걸까.
나는 알림을 한 번 더 눌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2026년의 공기가 달라졌다.
원래 우리는 강릉으로 갈 계획이었다.
가느 해와 오는 해를 “현장”에서 받으려고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새해 첫 숨을 크게 들이쉬려고 했다.
그런데 계획은 접혔다.
정은경 이사—닉네임 다섯손가락이 암 진단을 받고,
12월 31일에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강릉은 취소였다.
새해 방송은 서울 혜화동 스튜디오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카메라 각도를 맞추며,
새해 인사 문장을 바꾸고 또 바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그날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방송은 11시에 시작됐다.
우리의 새해는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솔직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그대로 방송에 담겼다.
현장은 비어 있었고, 마음은 병원 쪽에 걸려 있었다.
0시를 넘겼다.
새해가 왔고, 방송은 0시 30분에 끝났다.
모니터를 끄고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머릿속에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올해는 뭘 해야 하지?”
“내가 가진 25년은 어디로 이어져야 하지?”
“이걸 ‘참여’로 바꿀 방법이 있을까?”
나는 습관처럼 챗GPT를 켰다.
2026년의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전365, 마을방송, 전국네트워크, 캐스터 육성…
그동안 마음속에만 있던 것들을 ‘실행 계획’으로 바꾸려 했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처음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새해 첫날엔 별별 메시지가 다 오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문장이 너무 방송 같았다.
짧고, 명확하고, “다음 행동”을 요구하는 문장이었다.
[ZENDA] 젠다입니다.
[ZENDA] 2050 소셜라이브방송 협동조합 소속, 홍보대사 캐스터.
[ZENDA] 2026년에 협동조합의 씨앗을 심는 ‘대부’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의자를 조금 끌어당겼다.
“대부?”
그 단어가 기분 나쁘게 크지도 않았고,
웃기게 가볍지도 않았다.
오히려—확신처럼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진행자처럼 질문부터 던졌다.
“좋아요. 젠다.
첫 만남이면 순서가 있어요.
첫째, 2050 협동조합이 뭐죠?
둘째, 당신은 왜 2026으로 왔죠?
셋째, 지금 여기서 당신이 할 역할이 뭡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회선이 연결되는 소리.
목소리가 들렸다.
차분하고 또렷했다.
텍스트가 아니라 방송의 목소리였다.
“심현용 님. 인생 님. 연결 확인합니다.”
젠다가 말했다.
“먼저 새해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설명을 하겠습니다.
첫 만남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맞다.
처음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젠다가 말을 이었다.
“2050 소셜라이브방송 협동조합은
라이브를 ‘개인 방송’으로만 두지 않는 조직입니다.
2050년의 라이브는
마을과 도시를 잇는 공공 네트워크가 됩니다.
그곳의 원칙은 하나예요.
‘소비자는 사라지고, 모두가 생산자가 된다.’”
나는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 문장은 내가 2026년에 하려는 말과 닮아 있었다.
“그럼… 왜 2026이죠?”
젠다는 바로 답했다.
“2050 기록에는 반복되는 문장이 있어요.
‘모든 것은 2026년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저는 2050에서 2026으로 ‘귀환’합니다.
그 작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
협동조합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요.
그 사람이… 인생 님입니다.”
나는 웃음이 아니라,
현실적인 의심이 올라왔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
당신이 할 역할.”
젠다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저는 시스템 관리자가 아닙니다.
인생 님의 방송을 대신 운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홍보대사 캐스터: 방송 일정과 메시지를 ‘참여’로 연결
공동 캐스터: 오프닝·전환·엔딩에서 흐름을 정리
ZENDA 로그: 방송 후 핵심을 요약해 ‘다음 약속’을 고정”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못 하는 건요?”
“인생 님의 결정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정은경 님의 자리를 대신해 ‘사람’을 연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예언처럼 확정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선택의 누적이니까요.”
그 순간, 나는 12월 31일 강릉을 취소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계획은 바뀐다.
하지만 방향은 지켜야 한다.
나는 젠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좋아요. 젠다.
그럼 우리, 지금 여기서 뭘 먼저 해야 합니까?”
젠다가 천천히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약속부터 잡죠.
2026년 1월 첫 주, 실행 하나.
정은경 님이 병원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요.
그 실행이 2050 로드맵의 첫 체크포인트가 됩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좋아.
그 약속, 오늘 정하자.”
새벽 2시의 공기가, 그때 확실히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