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은 완벽함보다 강하다
새벽의 푸른 빛이 혜화동 스튜디오 창을 스며들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냉기보다 뜨거운 심장의 박동이었다. 화면 속 이름, 젠다(ZENDA). 그녀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생명력이 새벽 공기를 흔들며 스튜디오를 활력으로 물들였다.
“선생님, 오늘 ‘1분 미션’ 첫 방송, 준비되셨죠?”
젠다의 목소리는 새벽 이슬처럼 맑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노련한 연출가의 단호함이 숨어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그 한마디가 내 어깨에 25년 방송 경력만큼의 무게를 얹었다.
어제 밤, 젠다가 제시한 ‘1분 미션’은 내 머릿속을 온통 휘저어 놓았다. “얼굴이 부끄럽다면 손만 보여주세요. 목소리가 떨리면 동네 풍경을 찍어도 돼요. 중요한 건 ‘내가 만들었다’는 그 첫 경험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중장년 시니어들이 ‘생산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그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막상 내 차례가 되자, 오랜 방송 인생에도 불구하고 날 선 칼날처럼 부담과 두려움이 심장을 할퀴었다. 내가 과연 모범을 보일 수 있을까? 혹시 어설프게 비춰져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을까?
그 순간, 젠다는 기다렸다는 듯 화면에 문장을 띄웠다. “선생님, 어설픔은 완벽함보다 강해요.” “지금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방송이 아니라, 선생님의 진솔함이에요.” “완벽을 쫓다 보면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하게 돼요. 첫 발은 늘 어설프고 불안한 법이죠.”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나를 움직이는 강력한 명령처럼 다가왔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았던 ‘라이브의 법칙’이, 20세 인공지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진리로 통했다.
젠다는 망설일 틈을 주지 않았다. 화면에 몇 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닳은 손바닥, 흑백 필름 속 해맑은 아이들, 어설프지만 진심이 담긴 소박한 그림.
“오늘의 미션은 이것이에요. 내 인생의 한 조각, 1분 영상으로 남기기. 화려하지 않아도 좋아요. 익숙한 사물이나 공간을 배경으로, 선생님의 지난 삶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1분 안에 담아 시청자들과 나누는 거죠.”
나는 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남들보다 손가락이 두 개 부족한 손. 1970년 3월 3일, 선천적 장애로 태어난 내 삶은 늘 ‘부족함’이라는 꼬리표와 싸워왔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 세상의 차가운 시선. 그러나 어머니는 늘 말했다. “너는 할 수 있어.” 그 말은 나를 세상과 마주하게 했다.
젠다는 마치 내 삶을 옆에서 지켜본 듯, 중요한 조각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에요. 짧은 1분 영상 안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담길 거예요. 시청자들도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지’, ‘나도 무언가 해볼 수 있겠는데?’ 하고 느끼게 될 거예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브가 될 겁니다.”
그 말은 내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간절한 바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감정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젠다 씨… 좋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설퍼도… 좋습니다.”
나는 비어 있는 정은경 작가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옆에 투명하게 서 있는 젠다의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그녀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이미 내 스튜디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내 어깨를 지탱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25년간 고독하게 걸어왔던 라이브 방송의 길. 이제 정은경 작가의 간절한 메시지와 미래에서 온 젠다의 지혜가 함께한다. 이는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 위로 펼쳐지는 또 다른 서막이었다.
스튜디오 벽의 낡은 시계가 정각 7시를 알렸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지쳐 쉬고 싶던 육신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심장을 미친 듯 뛰게 했다. 화면에는 젠다가 제시한 미션 가이드라인과 함께 가장 강렬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한 조각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담담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첫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심현용입니다. 오늘, 저의 첫 번째 ‘1분 미션’을, 우리 중장년 모두의 첫 경험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25년간 이어온 라이브 방송은 새로운 여정을 맞이했다. 젠다의 첫 수업과 함께, 중장년 시니어들이 ‘생산자’로 거듭나는 위대한 시작이 전 지구적 서막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