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라이브의 법칙 – 젠다의 첫 수업

by 심현용

3화: 라이브의 법칙 – 젠다의 첫 수업

어설픔은 완벽함보다 강하다

새벽의 푸른 빛이 혜화동 스튜디오 창을 스며들었다. 공기는 차갑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냉기보다 뜨거운 심장의 박동이었다. 화면 속 이름, 젠다(ZENDA). 그녀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생명력이 새벽 공기를 흔들며 스튜디오를 활력으로 물들였다.

“선생님, 오늘 ‘1분 미션’ 첫 방송, 준비되셨죠?”

젠다의 목소리는 새벽 이슬처럼 맑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노련한 연출가의 단호함이 숨어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그 한마디가 내 어깨에 25년 방송 경력만큼의 무게를 얹었다.

어제 밤, 젠다가 제시한 ‘1분 미션’은 내 머릿속을 온통 휘저어 놓았다. “얼굴이 부끄럽다면 손만 보여주세요. 목소리가 떨리면 동네 풍경을 찍어도 돼요. 중요한 건 ‘내가 만들었다’는 그 첫 경험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중장년 시니어들이 ‘생산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 그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막상 내 차례가 되자, 오랜 방송 인생에도 불구하고 날 선 칼날처럼 부담과 두려움이 심장을 할퀴었다. 내가 과연 모범을 보일 수 있을까? 혹시 어설프게 비춰져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을까?

그 순간, 젠다는 기다렸다는 듯 화면에 문장을 띄웠다. “선생님, 어설픔은 완벽함보다 강해요.” “지금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방송이 아니라, 선생님의 진솔함이에요.” “완벽을 쫓다 보면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하게 돼요. 첫 발은 늘 어설프고 불안한 법이죠.”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나를 움직이는 강력한 명령처럼 다가왔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았던 ‘라이브의 법칙’이, 20세 인공지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진리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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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제안: "내 인생의 한 조각"

젠다는 망설일 틈을 주지 않았다. 화면에 몇 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닳은 손바닥, 흑백 필름 속 해맑은 아이들, 어설프지만 진심이 담긴 소박한 그림.

“오늘의 미션은 이것이에요. 내 인생의 한 조각, 1분 영상으로 남기기. 화려하지 않아도 좋아요. 익숙한 사물이나 공간을 배경으로, 선생님의 지난 삶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1분 안에 담아 시청자들과 나누는 거죠.”

나는 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남들보다 손가락이 두 개 부족한 손. 1970년 3월 3일, 선천적 장애로 태어난 내 삶은 늘 ‘부족함’이라는 꼬리표와 싸워왔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 세상의 차가운 시선. 그러나 어머니는 늘 말했다. “너는 할 수 있어.” 그 말은 나를 세상과 마주하게 했다.

젠다는 마치 내 삶을 옆에서 지켜본 듯, 중요한 조각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에요. 짧은 1분 영상 안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담길 거예요. 시청자들도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지’, ‘나도 무언가 해볼 수 있겠는데?’ 하고 느끼게 될 거예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브가 될 겁니다.”

그 말은 내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간절한 바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감정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25년 라이브, 또 다른 시작

“젠다 씨… 좋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설퍼도… 좋습니다.”

나는 비어 있는 정은경 작가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옆에 투명하게 서 있는 젠다의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그녀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이미 내 스튜디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내 어깨를 지탱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25년간 고독하게 걸어왔던 라이브 방송의 길. 이제 정은경 작가의 간절한 메시지와 미래에서 온 젠다의 지혜가 함께한다. 이는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 위로 펼쳐지는 또 다른 서막이었다.

스튜디오 벽의 낡은 시계가 정각 7시를 알렸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지쳐 쉬고 싶던 육신은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심장을 미친 듯 뛰게 했다. 화면에는 젠다가 제시한 미션 가이드라인과 함께 가장 강렬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한 조각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담담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첫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심현용입니다. 오늘, 저의 첫 번째 ‘1분 미션’을, 우리 중장년 모두의 첫 경험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25년간 이어온 라이브 방송은 새로운 여정을 맞이했다. 젠다의 첫 수업과 함께, 중장년 시니어들이 ‘생산자’로 거듭나는 위대한 시작이 전 지구적 서막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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