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엔 차젤레의 "위플래쉬" 2014 를 보고
1.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의 개념이 있다. 세계에 대한 새롭고 파괴적인 창조일까 세계에 대한 완벽한 모방일까
2.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인정투쟁의 극단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재즈드러머가 누군가가 해석해 놓은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기술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마침내 스스로가 인정하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고자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하는 뮤지션의 성장이야기다.
학생들을 닥달하는 플레처 교수가 완벽하게 구축한 단단한 세계를 만들어 놓고 자기를 따르지 않거나 균열을 일으키면 가차없이 욕을하고 내 쫓는 모방주의자에 가깝다면 앤드류는 그 세계를 파괴한다음 완벽한 모방주의자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창조주의자이다.
플레처교수가 그 누구도 도달하기 힘든 기술을 자랑하는 장인에 가깝다면 앤드류는 그 누구도 모방하기를 거부하고 끝내 자기만의 길을 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자유로운 예술가다. 장인은 스승이 될 수 있지만 예술가는 되지 못한다. 그게 음악으로 투사되었을뿐이다. 네로황제도 마을에 불을 질러놓고 그것을 보며 미를 탐했을 뿐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숭고한 기쁨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탐미는 중독적 쾌감이 있을뿐 숭고한 감정은 없다.
3. 앤드류의 마지막 연주는 그래서 장렬히 전사하는 예술가의 드문 항거이다. "너가 아닌 내가 신호하면 시작할거야!" 라고 외치며 드럼의 독주로 시작해 밴드의 연주로 막을 내린 카라반에서 지휘자 플레쳐의 존재감은 묵살된다. 자, 그럼 다시 음악은 무엇일까 특히나 여러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밴드음악은 서로의 음이 이루내는 조화와 화합이 우선되어야지 어느 한 사람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빛이 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재즈는 어떤 장르보다 연주자 개인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주가 핵심이다.
마지막 연주회 장면에서 앤드류에게 플레쳐가 한 마지막 말은 압권이다. "니가 꼰질렀잖아" 앤드류가 모르는 곡을 오프닝으로 열며 앤드류에게 복수하는 플레처는 스승도 아닌 유치찬란한 경쟁자에 지나지 않는다. 제자의 한계는 그렇게 초월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경연대회를 혐오해야 한다. 음악학교가 음악을 망치듯.
4. 찰리파커, 이 위대한 재즈 뮤지션의 생은 약물중독과 자살로 귀결되었다. 광기가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강박과 권력욕은 우울증환자와 자살중독자를 만든다. 플래처같은 스승아래 있다면 더욱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다. 차가 뒤집어지는 사고에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연주장에 나타난 앤드류에게 "넌 이제 끝났어 "말하는 플레처를 향해 앤드류는 독기를 품게되고 그를 형한 인정투쟁을 거두어 들이기로 한다. 어떤 경지에 이르는 길은 타인의 인정으로 도달되지 않을 것이다.
앤드류는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몸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플레처교수에게 인정받아 최고가 되어 링컨센터에 들어가겠다는 집착을 벗어던지고 난 후 앤드류의 연주는 그것자체로 경지에 이른 사람이 보여주는 숭고함일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그런의미에서 <위플래쉬>는 자신만의 연주로 이끌어가는 마지막 시퀀스의 감동하나로 완성되는 영화이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앤드류의 독주에 동조하는듯한 플레쳐의 일시적인 제스처와 눈빛은 너에게 졌다라는 항복의 뜻일 듯)
5. 이 영화를 오독하기 쉬운 첫번째 해석은 무한경쟁에 의해 부추겨지는 채찍질이 천재를 완성한다일 것이다. 천재는 기존의 것을 (가르침) 완벽하게 연주함으로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 과연 예술에 완성이 있을까) 천재는 현재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했을 때 평가받는 후대의 시간안에서만 존재한다. 천재는 그렇기때문에 동시대의 중력안에서는 무력하며 불행하다. 영화에서 무수히 오마주되는 35세의 나이에 우울증과 분열증에 시달리다 약물중독으로 자살하는 찰리 파커의 생이 그걸 증명해준다.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음악은 남을 구원할수도 없다.
6. 어찌되었든 한 편의 음악영화를 하드코어 스릴러 장르로 만들어버린 감독의 재능과 카메라 감독의 극강의 클로즈업 촬영 기술, 그리고 몽타주쇼트들은 배우나 관객의 감정을 끝까지 끌어올려 마지막에 한방의 강렬한 폭죽을 터트린다.
음악영화를 보고난 후에 그 음악을 듣기 두려워지는 유일한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 위플래쉬일거다. 이건 분명 안티음악영화다. 사는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제 음악까지 이렇게 하드코어여야 하는지. 그래도 난 또다시 위플래쉬를 보고있을 것이다. 내게는 최고의 음악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