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비 예보가 있던 날, 집에 거의 다 오고서야 깨달았다.
사무실에 우산을 두고 왔다.
나에게 이런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학교에 체육복을 안 가져가고, 리코더도 안 가져가고, 미술용품도 놓고 오는...
그러면 항상 옆반 친구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빌리러 갔다.
그 마음.
그 절박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산도 그렇다.
비가 개면 학교에 놓고 오고. 식당에 놓고 오고...
버스에서 잃어버린 우산은 몇 개인지...
그렇지 않아도 집에 우산이 별로 없어 쓸만한 우산을 찾기가 힘든데, 잃어버릴 때마다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처음 취업해서 내가 번 돈으로 산 우산도 여러 개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도 나는 꼼꼼하지 못한, 한마디로 덜렁대는 성격이었다.
이러니 회사에서 맡은 일을 실수 없이 해내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
그렇게 수많은 동동거림을 겪고 부딪힌 후에야 나는,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무조건 메모하는 습관이다.
아주 작은 일도 물 셀 틈 없이 메모해 놓는 것이다.
꼼꼼하지 못하니 손발이 조금 더 고생하자.
그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메모하는 습관이 자리 잡은 후부터는 회사일을 할 때 제법 꼼꼼한 사람인 척 흉내를 냈다.
더 나은 사회인이 되는 변화였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제 이 정도면 되었다.
어릴 때처럼 놓치지는 않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는데, 내 마음속은 아직도 그 어린 날에 머물러 있나 보다.
무의식에 남아 있는 조바심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 건지, 아직도 꿈에서 옆반 친구에게 체육복을 빌리러 간다.
이 나이에 학교에 다니는 꿈이라니...
체육복을 빌리러 다니는 꿈이라니...
이제 그렇게 동동거릴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꿈에서는 아직도 동동거린다.
그래서 우산을 놓고 온 오늘, 나 자신을 스스로 타일러 본다.
우산을 놓고 왔지만 괜찮아.
내일 또 비가 온대도 쓸 우산이 얼마든지 있어.
조바심 내지 마.
네가 쓴 메모들이 너를 위험에서 꺼내줄 거야.
그 메모들이 앞으로도 곁에 있을 거야.
이제 더 이상...
체육복은 챙겨가지 않아도 돼.
일단...
오늘은 '우산 가져오라'는 메모를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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