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주말 저녁이었다.
"엄마, 이 냄비는 끓이면 원래 색깔이 변해?"
'...?'
설거지를 하던 나는 둘째 아이의 이상한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냄비색이 왜 변ㅎ... 어?!!!"
고개를 돌린 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눈앞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비의 겉면이 하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악~~~~~!'
비명은 속으로만 질렀다.
부리나케 가스불을 끄고, 창을 열고, 환풍기를 틀었다.
연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뭐야... 엄마, 왜 그래?"
심상치 않은 나의 반응과 하얀 연기에 아이도 겁이 나는 모양이다.
설명하기에는 나의 정신도 굳어버린 상황.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냄비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연기의 원인이 보였다.
냄비 아래에는 실리콘 냄비 받침이 붙어있었다.
"엄마, 왜 그게 거기 붙어있어?"
"그러게..."
일단은 조심조심 뜨거운 받침을 떼어놓고 생각했다.
이건 아마도...
식탁 위에 올려둔 큰 냄비를 그대로 들고 주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탓이겠지.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게탕을 한가득 끓여 냄비째 식탁 위에 두고 한 마리씩 꺼내 먹은 날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남편이 냄비를 옮겨주길래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가스레인지 불을 켠 것이다.
냄비받침이 냄비에 달라붙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회색이었던 실리콘 냄비받침이 불에 그을려 생긴 하얀색 가루들이 냄비 겉면에도,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구석구석에도 날아가 앉았다.
한참 동안 문지르고 닦아내고 설거지를 했다.
만약...
예전에 쓰던 나무로 된 냄비받침이었다면?
그래서 불이 붙었다면?
내가 과연 당황하지 않고 베란다에 있는 소화기를 가져왔을까?
멍하니 닦아내고 있는 내 옆에서 아이가 신기한지 구경하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냄비 밑도 다시 보자!
오늘 무시무시한 체험으로 터득한 교훈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교훈을 나만 깨달으면 안 되겠지.
모임이 있어 외출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마누라 암살 시도에 실패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죽는 여자가 아님.